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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엔젤리너스
이명희 지음 / 네오휴먼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재능을 나누고 가진 것을 나누는 당신이 천사입니다"
<호모 엔젤리너스>를 읽으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절,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모의 수첩을 다시 읽는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무엇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하루 하루 인생의 무의미에 시달리며 사춘기를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다락방에서 상자 안에 들어있는 수첩 다발을 발견했다. 고모의 이름이 적힌 수첩 안에는 책에서 발췌한 글귀들과 명언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군데 군데 고뇌에 찬 고모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나를 울린 글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일생 동안 목 마른 한 사람에게 냉수 한 대접이라도 대접했다면 내 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였다.
<미친년 :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의 저자 이명희 씨가 또 다른 테마로 '호모 엔젤리너스'라 이름 붙인 11인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미친년>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저자 이명희 씨의 이번 테마는 '나눔'이다. 착하디착한 심성으로 '나눔'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이 책을 썼다.
저자는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나눔, 내가 참여하고 싶은 나눔에 관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정신없는 내 삶에 사치스럽게 여겨지거나 오히려 죄책감을 더해 주기만 했다. 이 글은 편안하게 '나눔'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들어봄으로써 나눌 '인연'을 한번쯤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눔에 대한 11명의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 보았다"(9). 세상 진리를 저 혼자 깨달은 듯 열에 들떠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힘주어 외치는 그 어떤 주장보다, 마치 스스로의 고민을 차분하게 털어놓듯 이야기하는 저자의 진솔함과 그녀의 맛깔스러운 문장에 담긴 호소력이 읽는 이의 마음에 더욱 깊고 짙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호모 엔젤리너스>가 겉으로 보여주는 주제가 '나눔'이라면, 안에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읽힌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의미를 물으며 잘 살고 싶다는,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참 질기게 싸워온 질문이다.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가도 곧 '이것이 옳은 방향인가?' 하는 의문에 시달리며, 오늘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매순간 끊임없이 고민한다.
<호모 엔젤리너스>는 인생의 의미란 큰 것에서가 아니라, 작은 것에서 찾아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작은 나눔에 담긴 행복의 파장을 느끼며, 여기 11인의 '호모 엔젤리너스'가 실천하고 있는 그리 거창하지 않은 나눔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11인의 '호모 엔젤리너스'는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나눔은 그저 실천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내게는 시골교회의 임락경 목사님의 나눔 이야기가 특별히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다. 아마도 임락경 목사님의 삶의 자리가 내가 지향하는 삶의 자리이나, 늘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나의 내적 번민을 더욱 자극하기 때문인 듯 하다.
<호모 엔젤리너스>는 인생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인생의 수단을 혼동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참된 '가치'와 '풍요'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나눔,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늘 그런 삶을 살 여유를 갖지 못한다 핑계하는 사람들에게 <호모 엔젤리너스>는 여유가 있을 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눌 때 여유로워지는 역설을 마음에 새겨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 참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또한 나눔을 실천하면서도 사회적인 시선이나 편견으로 고민하는 사람, 내게는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생생한 나눔의 현장 한가운데로 우리를 초청하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성공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성공 이유는 '오늘, 지금부터 시작하자'는 신조라는 말을 기억하며, 오늘 지금 내가 나누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이로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네가 주저하는 동안 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