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마르크 함싱크 지음, 이수영 옮김 / 문이당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도 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


아버지 영조의 분노를 사 뒤주 속에 갇혀 죽었다고 전해지는 비운의 사도 세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숨은 음모가 소설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그것도 두 가지 독특한 관점에서 재조명되었다. 첫째는, 외국인의 시각에서이다. 특이하게도 저자가 마르크 함싱크라는 벨기에인이다. 그는 "한국인이 될 뻔한" 한국 태생의 입양아이다. "벨기에인으로 자란 내게 한국은 그저 나와 관계없는 아시아의 한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사람에 의해 쓰여진 한국의 역사 소설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둘째는, 어찌 보면 사도 세자 사건의 주변부에 있었던 제3자의 시각을 통해서 재조명되었다는 것이다. 음모를 꾸민 가해 세력이나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바로 우리가 그리 눈여겨 보지 않았던 사건 주변의 신하들이다. 영의정 이천보, 우의정 민백상, 좌의정 이후, 그리고 이천보의 양아들 이문원과 그의 절친 서영우와 조일천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사도 세자 곁에 감도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세 정승이 사도 세자를 걱정하며, 이문원과 그 친구들을 통해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적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충신(忠臣)>이라는 책의 제목이 당시의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충분히 대변해주고 있다. 저자는 영의정 이천보가 집필한 <진암집(晉菴集)>을 우연히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영의정 이천보가 조선왕조에서 보기 드문 ’불천위’(不遷位)에 봉해진 인물이라는 것에 의문이 생기면서 당시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를 말한다고 한다.) 전쟁도 없는 태평성대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신하에게 내려진 영광, 그리고 그를 따라 자살 행렬에 합류한 좌의정 이후와 우의정 민백상. 삼정승의 잇단 자살과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비밀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적하며 사도 세자의 죽음을 재구성한 것이다.

사도 세자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의문이었다. 아무리 극악한 죄를 저질러도 감싸 안는 것이 부모이고 가족인 것을 생각할 때, 어찌하여 그는 그리도 철저히 부모와 가족에게 무참히 버림받았을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특히 <충신>을 읽으면서, 위기에 몰린 사도 세자를 바라보는 친모 영빈 이씨의 독백은 전혀 공감할 수 없을 정도로 계산적이다(293). 물론, 작가적 상상력이겠지만, 작가가 이런 상상을 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으로 '입양아'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스스로의 경험으로 알았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사도 세자를 눈엣가시로 여긴 가족들의 탐욕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를 세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의붓어머니와 친 누이동생은 그를 죽이려고 덤벼들었고(처음부터 그럴 의도까지는 아니였다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충성해야 할 신하들은 동조하거나 모른 척 했고, 분노한 아버지는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친 어머니와 아내는 지켜볼 뿐이었다. 권력 다툼이 불러오는 역사의 비극이 흔한 일이라고 해도 사도 세자만큼 불행한 인물은 또 없을 듯 싶다. 


이 책의 띠지에 보면 "사도 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사도 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직접적인 원인이 따로 있음을 강조하려는 뜻인 듯하다. 사도 세자가 궁궐 내에서 칼을 휘둘러 궁녀를 죽이고,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는 등 괴이한 행동을 보인 것은 치졸하고 흉악한 음모에 희생되었기 때문임을 분명히 밝힌다. 

영조의 자격지심, 마음 둘 곳 없는 젊은 중전과 화완옹주, 친정과 남편 사이에 낀 혜경궁 홍씨, 사색으로 나뉘어 권력을 다투었던 당파, 불안했던 정권 교체 등 불운하게도 모든 것이 세자의 편이 되지 못했다. <충신>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사도 세자를 외면했던 것은 그가 '자신을 속이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서운 아버지 영조도 눈치를 보는 노론의 잘못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그의 총명함과 눈치 없을 정도로 정직한 곧은 성정이 그에게 불운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총명했던 세자가 비참하고 어이없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궁’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를 향한 애처로움이 커서 그런지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가장 마음이 가는 한 사람이다. 이런 내게 <충신>은 작은 위안을 심어준다. 사사로운 이를 떠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를 지키고자 했던 세 명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고,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당당하게 선포한 아들 ’산’이 있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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