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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에 다시 읽는 1945년작 누아르 소설!
매일 밤, 한시쯤에. 그 남자는 매일 그 시간에 강을 따라 걷는 그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남자는 스물여덟 살의 젊은 형사 ’톰 숀’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휘파람을 불며 강 옆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했겠지만, 오직 그와 별뿐이었던 바로 그 밤에 인생의 나머지를 송두리째 바꿀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숀은 그 밤에 다리 난간 위에서 막 자살을 시도하려는 한 여인을 구한다. 그녀의 이름은 ’진 레이드’이다. 딱 봐도 부유층으로 보이는 이 스무 살의 아가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진은 지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별빛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중이다! 별빛이 두려워 떠는 진, 그리고 시작되는 진의 고백, 검은 먹물처럼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스며든다. 평화로운 밤의 분위기는 서서히 드리우는 차갑고 암울한 공포의 그림자에 의해 잠식 당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고리는 죽음에 대한 예고이다! 진은 어느 날, 자신의 시중을 드는 ’아일린 맥과이어’라는 하녀로 인해 불길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출장을 간 진의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예언 때문이다.
숀이 이 이야기에 개입하게 되는 것은 아일린의 도움으로 사업까지 승승장구를 하며 아일린을 절대 신뢰하게 된 할란에게 청천병력 같은 예언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죽음 예고! 만일 누군가가 "당신은 3주 안에, 정확히 자정에, 그것도 사자의 아가리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예고를 한다면? 숀은 이 예고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자 한다. 누군가의 예언처럼 진정 불길한 운명의 그림자가 할란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조작에 지나지 않는 사기일까?
읽은 책의 줄거리를 잘 쓰지 않는 내가 이렇게 길게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 소설이 누아르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는 코넬 울리치의 1945년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누아르의 시조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코넬 울리치 작품의 플롯(plot)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초기 누아르 작품은 주로 범죄와 탐정을 테마로 했다고 하는데,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역시 무엇인가 악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초월적인 공포스러움과 탐정으로 구성된다.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이었을 이 작품이, 이제는 이미 다양한 누아르를 경험한 2009년의 다른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그리고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책의 줄거리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둘째 이유는, 줄거리 말고 달리 더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생각하는 소설이라기보다, 읽으며 ’느끼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온 몸으로 그 악몽 같은 분위기에 젖어들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이야기가 어서 끝나주기만을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