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방식을 독자가 선택해야만 하는 독특한 구성의 대위법적 소설!


쉬는 날이면 <세바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즐겨 본다. 중년 여성들의 힘을 모여주는 신개념 토크쇼라는 의미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나에게는 '세대의 어우러짐'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요즘 음악 프로나 기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진들이 '그들만의 무대'라고 할 만큼 세대의 단절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세바퀴>는 웬만해서는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노련한 선배들과 풋풋한 신인들이 어우려져 서로에게 호응을 보내며 만들어내는 세대 공감이 재미를 준다. 요즘은 문화의 차이보다 세대의 차이를 더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의 시각에서는 그야말로 신선하고 훈훈한 신개념 토크쇼로 보인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 차이를 지닌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독일의 일흔두 살 노작가인 세뇨르 C와 스물 아홉의 매력적인 필리핀 여성 안야가 주인공이다. 소통과 공감 지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의 삶에 자리에서 살아가던 두 사람이 어느 날, 아파트의 세탁실에서 우연하게 만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흔두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의 매력에 한 눈에 빠져버린 노작가는 그녀를 설득해 자신의 타이피스트로 고용한다. 덕분에 안냐는 세료르 C가 집필하는 에세이의 첫 독자가 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서로의 소통이 시작된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남녀는 그렇게 소통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나의 눈에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바로 노작가 세료르 C의 변화이다. 책에 등장하는 에세이는 노작가 세료르 C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의 '강력한 의견들'이 점차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료르 C가 집필하는 에세이는 작가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철학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가끔 친구들이 부모님과 갈등을 빚을 때면, 나는 오래도록 그런 방식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가 맞춰드리는 것이 더 편하다고. 그런데 일흔두 살의 노작가에 나타나는 변화가 흥미롭다. 삶의 가치와 기준이 되는 개인의 철학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노인은 '작가'가 아닌가. 작가가 가진 자신만의 색깔과 사상은 어떤 '고집'과도 같은데, 한참 어린 젊은 여성의 충고로 인해 그의 글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세료르 C가 보여주는 안냐에 대한 '존중'과 안냐가 노작가에게 보내는 '존경'과 '연민'은 서로에 대한 피상적인 판단을 넘어 서로를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다가간다. 마치 <레옹>이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킬러 레옹과 어린 소녀 마틸다의 사랑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어떤 방식으로 읽을 것인지 독자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책에 등장하는 세료르 C를 대하듯, 이 책의 작가와 소통하는 방식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바흐의 음악처럼 읽히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쿳시의 대위법적 소설'이라는 설명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3개의 서로 다른 멜로디가 동시에 연주된다. (대위법이란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음악은 서로 다른 멜로디를 동시에 들으며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책을 읽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작가의 에세이와 세료느 C, 안냐의 목소리가 페이지마다 삼단으로 구성된 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3개의 목소리를 구분해서 이해하고 난 후에, 다시 그 조합을 생각해야 했다. 상당한 수준의 독서 내공을 지닌 독자라면,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의견을 가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실험적인 소설에서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는 수준에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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