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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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허황되지만 꿈을 꾸었고, 무모했지만 도전했고, 실패했지만 시도했던 이들.


몇 해 전, 베이징 올림픽 때 방송매체가 평소 관행대로 방송을 했다가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에게 호되게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쓰러지면서도 역도 바벨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한 선수의 투혼에 감동을 받은 국민들이 이러한 선수들을 외면한 채 금메달을 딴 선수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방송의 관행을 질책한 것이다. 이후로 올림픽을 보도하는 방송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감동적이고 훈훈한 선수들의 사연이나 소외된 경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작가 폴 콜린스는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다소 엉뚱한 이 작가는 역사를 들여다 보는 새로운 필터를 제시한다. 그는 역사적인 승자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역사가 가차없이 잊어버린 사람들의 잊혀진 삶을 추척한다. 위인들을 배우고 기억하기에도 과부화가 거릴 지경인데 역사가 잊어버린 사람들을 구태여 추척할 필요가 있을까? '신선한 의도'이기는 하나, 그렇게 추척하여 그들의 삶을 복원해낸다 하여도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읽고 지나가는 작은 에피소드나 가십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역사가 잊은 열세 사람의 삶을 추적하여 <밴버드의 어리석음>이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책에 수록된 열세 사람은 어떠한 기준으로 선발된 사람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작가 마음대로'이다. 사기꾼, 예술가, 과학자, 언어학자, 농부, 사업가, 시인, 군인, 작가 등 직업도 다양하다. 한가지 공통점을 찾으라면 처음부터 어처구니 없는 시도였거나, 아니면 시도는 좋았으나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이유(더러는 안타까운 이유)로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허황되지만 꿈을 꾸었고, 무모했지만 도전했고, 실패했지만 시도했던 이들. 이미 지나버린 역사이니 부질없는 가정(If)이지만, 안타까움에 나는 자꾸만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가정'(If)을 하며 책을 읽었다. 오로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목적 하나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째로 위조했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 만약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고 지지해주었다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음만으로 세계 최로의 공용어를 만들고자 했던 프랑수아 수드르의 연구가 성공했다면? 포도 품종 개발에 성공한 이프레임 불이 특허를 딸 수 있었다면?(포도 쥬스로 유명한 웰치가 나와서 특히 재밌게 읽었다.)  엄숙함이 지배하던 시대에 컬트적인 연기를 하고, 기이한 복장을 하고 다녔던 로버트 코츠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최초로 의문을 제시했던 딜리아 베이컨이 함께 연구할 동료 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면?

<밴버드의 어리석음>이 소개하는 열세 사람의 기이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결국 '운'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서 원대했던 시도에 비해 너무 아쉽게 끝나버린 사람들. 따지고 보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든 것이 원인이 된다는 측면에서, 결과를 가르는 그 미묘한 차이는 결국 '운'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가 '운'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니 성공과 실패에 두었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내 안에 불꽃이 있다면 성공이나 실패에 그리 연연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단조롭기 그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지금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불꽃을 품은 그 자체로 행복할 듯하니 말이다.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고, 과거 속으로 사라지며, 역사로부터 잊혀졌지만, 여기 열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은 '불꽃처럼' 살라지는 삶이다. 그들은 적어도 폴 콜린스가 관심을 가지고, 문화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읽혀질 정도로 시시하게 살다가지 않았다. 이들처럼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서 나의 모든 것을 불사를 만큼 나도 '열정적인 불꽃'으로 타오르고 싶다. 내 전 생애와 남은 생명을 다 태우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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