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가 생각나 가사를 찾아보았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 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만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선생님이 가르쳐준 이 노래를 한참 불렀던 시절에는, 그저 가사가 동화처럼 예쁘고 참으로 건전하다고만 생각했지, 제목과 노랫말이 전해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목은 '아름다운 것들'인데 노랫말이 참 슬프다. 아름다운 것들이 때가 되면 사라지니 말이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으니 이 노래의 의미가 비로소 조금 이해되려 한다.  <가스미초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꼭 이 노래를 닮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평범한 생(生)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자주 잊고 사는 까닭에 '사라질 때'가 느닺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충격을 받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사라질 때가 오리라는 것 말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뜰까. 사라진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것은 너무 늦은 때에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가을에 너무도 멋지게 어울리는 노란 은행잎 가득한 표지, 그 표지에 이끌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었다. 의미나 줄거리가 어림도 되지 않는 다소 낯선 제목의 소설 책 <가스미초 이야기>, 가스미초는 '안개마을'을 뜻한다. 저자는 주인공 '이노'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여덟 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려한 장미빛이 아닌, 은행잎처럼 수수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남기며 안개처럼 조용히 흩어지고 있다. 그들의 인생이 조용히 흩어질 때,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차오르며 나는 어느새 내게서 조용히 사라져간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으로 헤이고 있었다. 언제나 별로 말이 없으셨던 외할아버지, 전화로 '어린왕자'를 읽어주던 친구,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내 앞에서 주정을 했던 선배 언니에 대한 추억,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시절의 아빠와 엄마의 모습과 꼬마였던 나. 어쩐지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그리움',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감정이다. 치열하고 바쁜 일상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삼켜버렸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아온 세월이 느껴진다. 

슬픈 첫사랑을 간직한 할머니, 이노에게 한 장의 졸업사진을 마지막 선물로 남겨주신 할아버지, 넙죽 엎드린 자세로 은행을 줍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찍어 '노스승'이라 이름붙인 사진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아버지, 할아버지의 유골을 안치하며 "아버지,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어머니. 이노의 인생과 연결된 이분들의 삶이 이노의 인생에 차지하는 자리를 생각하니,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의 2절에서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작은 새'가 얼마나 가엾은지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가스미초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는 착한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슬픈 이야기, 안개처럼 가득 피었다가 조용히 흩어지는 인생에 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은행나무로 가득한 가로수 길을 찾아 걸어야겠다. 하늘로 고개를 들고 은행잎 가득한 틈새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빛을 보려면 서둘러야겠다. 조용히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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