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목횟집 시평시인선 31
권순자 지음 / 시평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시인이고 싶은 날에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삶이고, 모든 것이 생명이었다.
그러나 오랫 동안 시어를 잊고 살아온 나는 시인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
내게는 바다도 그저 바다일 뿐이고, 폐선도 그저 폐선일 뿐이고, 바람도 그저 바람일 뿐,
저기 저 멀리 나와 상관 없이 그저 그렇게 저 혼자 존재하는 그것일 뿐인데,
시인에게는 출렁이는 생명이 되고, 살아온 세월이 되고, 울음이 되었다.

시인은 바다에 있다. 
마트 한켠에서 물결치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고등어처럼 살다 바다를 찾았는가.
파도치는 그리움을 타고 그 바다에게로 가서 섰다.
시인의 노래는 구원을 갈구하는 순례자의 노래도 아니고, 
삶의 환희를 노래하는 모험가의 노래도 아니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돌아보며 지금 여기에 서서 자신과 대화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돌아보는 그 세월이 참 쓸쓸하다.
다른 정보 없이 시만 읽어도 시인이 중년이구나 짐작할 수 있겠다.

치열하게 생각해도 생(生)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는 마음 안고 시를 읽었다.

유난히 가을 타게 하는 시집이다.

낙엽도 아닌 단풍을 보면서 오랫만에 계절앓이를 했다.
시인의 감성이 내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 어설프지만 시인을 흉내내고 싶어진다.
어차피 지나는 인생, 부끄러울 것 뭐 있나 하는 배짱도 생긴다. 
살아도 살아도 나를 모르겠고, 마음이 자꾸 안으로 안으로 움츠려들 때엔,
차라리 말을 말자 말을 말자, 입을 닫자 입을 닫자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나도 시인이 되어보고 싶다.
그리운 것들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분열되는 생각 끌어모아 하나의 주제로 만들어 ’너’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나를 바라보면, 
누군가 귀를 열어 내 마음 들어줄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우목횟집>은 지독한 가슴앓이 속에 뱉어낸 시인의 소리 없는 울음 같다.
그러나 영화 <밀양>에서처럼 차가운 마당에 따뜻한 햇살 한줄기 비쳐든다.
쏟아내고 쏟어내어 맑아지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읽으니 변산반도 곰소에 가고 싶어진다.
뜨거운 여름 한철 지나고, 지금은 휑할 것 같은 가을 바다 앞에 서있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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