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펄 벅 지음, 정연희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그 순간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는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문제를 다층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펄 벅의 소설이다. 어찌 보면 제3자이면서도 이 문제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로라’는 마치 펄 벅 자신의 투영으로 보인다. 펄 벅은 한국전쟁으로 태어난 혼혈아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사랑과 용서와 치유의 주제를 담는 동시에 그 안에 전쟁과 인권과 문화와 정치적인 주제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내었다.

주지사 선거에 후보로 나서 대권을 향해 달려가는 크리스와 과학자 로라는 서로에게 완벽한 남편이자 아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가 평온했던 이 부부의 행복을 깨뜨려버린다. 젊은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크리스, 그때 한국 땅에 태어난 크리스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문제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는 ’로라’는 실제로 한국 혼혈아들을 돕는 일에 헌신한 펄 벅 자신의 투영으로 보이고,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완벽한 이력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크리스는 마치 미국이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이 문제의 당사자이면서 직접적인 책임자이기도 한 크리스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했던 자신의 입장을 이해받기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가 아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원조’이지,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관심이 아니다. 한국인 어머니는 가혹한 자신의 운명을 쓸어안고 아파하느라 자신의 아들을 사회와 문화의 편견 속에 내동댕이 친 채, 아들의 불행과 어려움과 아픔을 전혀 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의 나라에도, 아버지의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 속에 어렵게 살아가는 ’크리스토퍼’를 한 사람으로, 가능성을 지닌 한 어린아이로 바라봐주는 사람은 로라이다.

펄 벅은 "그 순간 새해가 밝아왔다"는 희망찬 메시지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펄 벅은 아픈 역사를 과거로 남겨놓고 우리가 맞이해야 할 새해, 희망찬 새해가 열리는 ’그 순간’을 보여준다. 우리가 열어가야 할 새해와 어떻게 하면 그 새해를 열 수 있는지 그 길을 보여준다. 

전쟁과 인권과 문화적 편견과 정치와 정책의 주제를 추상적으로 보면 대단히 거창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실제 어려움을 겪으며 상처와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구체적인 개인, 개인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방안을 찾아가는 시각은 ’거시적’이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사랑과 용서는 내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이웃에게 가닿을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희망이 시작될 것이다.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행복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크리스의 포부가 그의 사랑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가닿았을 때, '그 순간' 새해가 열렸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을 텐데도 골치 아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상처와 혼란을 딛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 로라(동시에 펄 벅이기도 한)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내며, 그 가르침을 기억하겠노라고,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약속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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