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가! 아니, 그 무엇이라면 바로 그 무엇은 무엇인가?

"천 개의 시어(詩語)가 빚어낸 한 편의 소설"이라는 극찬과 함께 시소설의 경지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흥미로운 설명이 붙어 있는 소설집이다. <달에 울다>와 <조롱을 높이 매달고>라는 두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의도적인지 알 수 없지만, 특이하게도 두 작품 모두 40대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두 남자 모두 가족이 없고, 개를 키우고, 나이든 개가 죽는다. 두 남자 모두 부모님들이 참으로 덧 없고 고단한 인생을 살다 갔다. 남겨준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그런 삶, 돌아가셨을 때 차라리 그것이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하여 이 두 남자의 삶은 지독하게 고독하고, 너무나 하찮다. 참으로 지독하게! 그러나 이러한 생에 대해 두 남자 모두 참으로 무심하다! 도대체 생(生)에 대해 의욕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 편의 시처럼 운율이 느껴지는 <달에 울다>는 단숨에 읽어버렸다. 사계절을 모두 담고 있는 병풍처럼 시간이 흐름이 한눈에 보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는 동안 주인공은 너무나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다. 삶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숨막하게 한 것은 바로 그렇게 훌쩍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대한 묘사였다. 

"볏짚을 채운 요와 고이노보리를 부셔 만든 이불 속 아이는 바로 30년 전 이제 막 열 살이 된 나다."(p. 8)
"군데군데 솜이 삐져나온 요와 땀내 나는 값싼 담요 사이에 끼어 있는 젊은이는, 꼭 20년 전의 갓 스무 살이 된 나다."(p. 32)
"방에 어울리지 않는 거위털 이불과 양털 요 사이에 끼어 있는 그 사내는 꼭 10년 전, 서른 살 때의 나다."(p. 61)
"점기담요와 전기요 사이에 끼어 있는 그 사내는 40년하고 10개월이 된, 현재의 나다."(p. 84)

하나의 사건을 기억하고, 하나의 사랑을 추억하며, 부모님께 물려받은 사과밭에 의지하여 근근이 살아가는 이 남자에게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귀퉁이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하나의 흙 알갱이처럼 존재하며, 그저 그렇게 산다. 나고 지는 꽃처럼, 피었다 지는 안개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이 땅에 잠시 머물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것이 결국 인생인가? 오직 달만이, 달빛만이 영원한 듯하다.

<조롱을 높이 매달고>는 조금 더 복잡하다. 정상인 듯, 비정상인 듯 알쏭달쏭한 의식세계를 가진 주인공. 어딘선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피리새의 소리. 의사의 진단대로 하면, ’너무 열심히 산 것’이 문제라고 한다. 너무 열심히 산 그의 ’전반기’는 직장도 없고, 가족에게도 쫓겨난 채 그렇게 끝이 났다. <조롱을 높이 매달고>는 ’후반기’ 인생을 찾아가는 어떤 과정을 보여준다. 혼란과 절망을 넘어가지만, 그가 찾은 ’후반기’ 인생도 그다지 새로울 것 없고, 새삼 어떤 희망도 보이지는 않는다. ’조롱을 높이 매달고’ 자유를 찾아가는 듯 하지만, 슬프게도 나의 눈에는 자유를 찾았다고 보아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삶이 대단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삶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대단하게 흥분하고 요란하게 들썩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는 그러한 깨달음, 그곳에서부터 인생은 진짜 의미있어질지 모르겠다. 아귀다툼 같은 욕망을 넘어서고, 욕심을 버리면, 그때 비로소 진짜 가치가 보일 것만 같다. 나의 눈에 하찮아 보이는 삶을 살아낸 이 두 남자의 내면에 어떤 내공이 있어 보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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