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신예희 글.그림.사진 / 시그마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세상은 넓고 가볼 곳은 많다.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는 세상은 넓고, 가볼 곳도 많은 세상에 한 가지 더, 먹어봐야 할 것도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부지런히 살고 싶어지는 세상이다.

사람 냄새, 땜 내음,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좋아 박물관이며 미술관 대신 복작거리는 시장통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그녀는, 음식을 테마로 한 맛있는 여행지로 우리를 유혹한다. 미식가도 아니고 비위도 약해 낯선 음식을 선뜻선뜻 먹지 못하는 나지만, 책에 가득한 먹거리 사진은 먹는 즐거움 못지 않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음식과 문화를 담은 사각 프래임 속에 팔닥팔닥 살아 움직이는 지구촌의 활기찬 삶의 현장에 서면 저절로 즐거운 노래가 흥얼거려질 것 같다. 활기찬 사람이 보는 세상이라 그런지, 책을 통해 만나는 모든 곳에 활기가 가득하다.

지구촌으로, 그것도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 삶과 땀이 어우러진 시장으로 먹거리 여행을 떠나려면, 첫째는 비위가 좋아야하고, 다음으로는 무엇보다 성격이 좋아야 할 듯 하다. 못 말릴 호기심, 용감무쌍한 도전정신과 잘 맞아떨어지는 저자 신예희의 넉살 좋은 성격은 곧 그녀의 생존력과 동일어가 된다. 낯선 곳, 낯선 음식, 낯선 사람, 즉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오히려 낯설어서도 더 즐거운 그녀가 부러울 뿐이다. 저걸 어떻게 먹지,라고 생각되는 음식도 서슴없이 입으로 가져가는 그녀의 강력 비위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배가 고프면 화나는 그녀"와 홍콩&마카오, 스페인, 터키, 태국, 일본의 풍성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엄마 손을 잡고 신나게 따라나섰던 우리 재래 시장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닭집에서 엄마가 고른 닭을 주인 아줌마가 직접 잡는 모습을 보고 덜덜 떨었던 기억, 토마토 100원 어치를 큰 검정 봉지에 한 가득 담아주셨던 맘씨 좋은 아줌마에 대한 기억, 당근과 오이 같은 각종 야채를 예쁜 모양으로 써는 아저씨의 묘기를 구경하느라 엄마 손을 놓쳤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기억은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이면 필수 코스로 들렀던 튀김집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 시장가는 엄마를 따라가려고 그렇게 기를 썼던 가장 큰 이유는 김말이 튀김이나 호떡을 하나 얻어 먹으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는 그런 소박한 시장 이야기에서부터 향긋하고 낭만적인 먹거리 이야기로 푸짐하다. 그때 그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누비며 신기한 세상과 만났던 것처럼,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는 활기차고 통통 튀는 친구의 손과 같다. 겁 많고 지루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내 손을 잡아 복작복작대는 세상과 만나게 해주었다.

지구촌 요리 레시피와 같은 책, 참신하고 독특하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지도 않고 먹는 이야기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미식가가 아닌 나는 살짝 아쉽다. 한 가지 음식만 잔뜩 먹고 다소 물린 기분이라고 할까. 다음에는 음식 이야기와 함께 사람 이야기도 곁들여 주면 좋을 것 같은데,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은 반대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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