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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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 되어가는 지구촌은 국가의 경계선을 적극적으로 지워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본과 노동력과 상품과 소비가 국경을 넘나드느라 국경선이 닳고 있다. 그런데 계층간 구별짓기와 거주의 경계선은 오히려 더 견고하고 선명해지고 있다. 가진 자는 가진 자들 끼리, 없는 자는 없는 자들 끼리 모여 살며 자연스러운 거주의 경계가 그어진다. 몇 해 전에, 미국 내의 백인 학생들이 동양계를 피해 이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흑인, 또는 히스패닉들의 유입으로 마을이 시끄럽고 지저분해진다고 느끼는 백인들이 백인들만 사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이사했던 것처럼, 지금은 학교에서 동양학생을 피하여 자기들만 모이는 학교나 동양계가 적은 마을로 옮기는 사례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국경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웃의 경계에는 더욱 견고하고 높은 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13구역’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면, 정부에 의해 철저히 격리되고 범죄자들이 장악한 위험지역이 나온다. 미국도 흑인 빈민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은 ’위험 지역’으로 인식된다. 갱단이 지배하는 무법천지 위험지역. 흑인 빈민이 아니라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그 지역에 ’인종과 빈곤 문제’를 연구하고자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한 괴짜 사회학도가 있다. 바로 어렸을 때, 인도에서 이주해온 ’수디르 벤카테시’이다.
 

저자 수디르 벤카테시는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컴퓨터에 들러붙어 앉아서 빈곤의 원인을 밝혀줄, 조사 자료에 숨겨진 어떤 유형을 찾아내려고만 애쓸 때", 직접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미국 최악의 빈민가인 로버트 테일러 홈스라는 곳에서 갱단의 한 지역 보스와 친구가 되고, 마약상, 코카인 중독자, 무단 입주자, 매춘부, 포주, 사회운동가, 경찰, 주민 대표, 공무원들과 어울리며 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미국 최악의 빈민가를 구석구석 탐색하며, 밀착 연구한 보고서가 바로 <괴짜사회학>이다. <괴짜사회학> 사회학 이론이나 사회학적 분석이 드러나게 서술되어있지는 않지만, 조직폭력배와 직접 어울리면서 도심 빈민가의 작동 원리를 관찰하고 인터뷰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그래서 제목은 <괴짜사회학>이지만 이론서가 아니라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
 

시카고에서 가난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주류 사회에서 분류된 채, 정부의 방치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최하층’ 도시 거주민, 로버트 테일러 주택단지의 수천 가구들의 삶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남긴다. 그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갱단들의 ’무법적 자본주의’이다. 가족 파티, 운동 경기를 즐기는 빈민촌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마약과 매춘과 폭력과 차별이 일상으로 버무려져 있고, 불법 경제 활동이 자연스럽고,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섹스’를 화폐처럼 사용하고 있다.
 

범죄조직까지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요즘이다.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빠르게 양극화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고 있다. 만일 ’13구역’이나, ’로버트 테일러 홈스’처럼 조직폭력배가 장악하는 빈민 지역이 우리나라 도심에 생겨난다면? 내가 그곳에 속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인가?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은 담론을 쏟아내며 복지와 정책과 계획을 논하지만, 소리만 시끄러울 뿐 사회의 어두운 그늘은 걷혀지기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괴짜사회학>은 도시 빈민가의 삶과 구조적 반복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 처방은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자들에게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준다. <괴짜사회학>은 "대부분이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대상인,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 별 관심이 없는" 사회학 통계와 처방은 가짜라고 말한다. 연구대상자들의 삶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노력 없이 그들의 문제를 논하고, 해법을 논하는 것은 모두 기만이요, ’헛소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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