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번 읽게 되는 책!

같은 혼합음식이라도 조리법과 재료의 특성을 조화롭게 잘 살려서 조리하면 ’퓨전 요리’로 거듭나지만, 적당히 얼버무리기만 하면 이도저도 아닌 ’잡탕’이 된다. 정도가 심하면 먹지 못할 ’꿀꿀이 죽’이 되고. 그런 기준에서 보면, <천사의 게임>은 ’퓨전 요리’와 같은 맛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장르를 정의내릴 수 없다. 소설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장르를 혼합해놓은 듯하다. 그러나 <황혼에서 새벽까지>라는 영화를 봤을 때 "도대체 장르가 뭐야?"라고 질문하며 당혹스러웠던 것과는 달리, <천사의 게임>은 미스터리, 판타지, 연애, 공포, 액션 등이 고루 섞여 있는데도 각각의 특색이 튀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전혀 새로운 맛을 창출해냈다. 아주 노련하게 말이다. ’성인이 1년에 평균적으로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스페인에서 출간 40일 만에 100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일단은 스페인 국민에게 객관적인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 국민을 단박에 사로잡을 만큼 내용도 정열적이다. 작가가 굉장히 수다스럽다. 다행한 것은 작가의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과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수다스러운 작가는 사색의 틈을 주지 않고 정신없이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특히 익살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이며, 낭만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수준 높은 대화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내용을 음미해야만 할 다소 모호한, 그러나 무엇인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상징적(은유적?) 대화가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는 내게 자주 브레이크 걸었다. 공포와 음모의 어두운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덮쳐오는 가운데 위태로운 주인공의 운명이 아슬아슬한 채로 그렇게 완급을 조절하며 읽는 맛도 괜찮았다.

이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 그저 가볍지 않고, 진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작가의 고뇌’에 이입되는 감정 때문이다. ’잊힌 책들의 묘지’로 설정된 미스터리한 공간은 마치 나에게는 작가의 머릿속 또는 그 영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등장인물들이 품고 있는 책에 대한 수순한 사랑과 작가적 광기가 실타래처럼 엉켜서 운명을 만들어간다. ’작가적 명성과 부’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창작의 욕구와 좌절이 주는 극한의 고통!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흥미와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욱 주목해볼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발생했다! 처음부터 미스터리했던 인물의 정체가 끝까지 미스터리하다. 내가 찾은 단서는 하나뿐! 그 하나의 단서로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돌려 더듬더듬 스토리를 다시 구성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실제를 구성해내기에는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 책을 함께 읽은 독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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