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콘 제1부 세트 - 전4권 - 한중전쟁
김경진 지음 / 씨앗을뿌리는사람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반도는 지금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이다.
우리는 지금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황 가운데 있는 것이다.
1부로 한중전쟁을 다룬 <데프콘>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지금 휴전 중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급작스럽게 내 안에 ’위기감’을 형성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할 때도
방송과 외신에서 전하는 긴장감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평균 50년의 한 번꼴로 전쟁을 겪어왔다는 한반도 땅에 살면서도 
전쟁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온 내가
참 배짱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데프콘>은 출간된지 한참 지난 전쟁 소설이다.
1999년에 초판이 인쇄되었으니 10년이 지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10년 전에 만들어진 <데프콘>의 가상 시나리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데프콘>은 전쟁이 가상 게임이나 먼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경험’, ’나의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지독한 두려움 속으로 독자를 몰아간다.
그만큼 전쟁의 현장감과 현실감이 탁월하다.
한반도 정치 상황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읽어내는 통찰력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전쟁사에서 갖는 중요성과 전략적 의미, 
영화 속 전쟁처럼 비현실적인 비극이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지독하고 끔찍한 전쟁의 실제가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데프콘>에서 한반도는 통일국가를 이루었고, 중국은 내전 중이다. 
대한민국은 통일국가를 이룬 뒤에도 여전히 힘 없는 작은 나라이고,
거대한 군사력으로 무장된 중국은 주변 국가를 하나씩 먹어 치우면서
공포와 불안의 바람을 타고 대한민국을 조여온다.
그리고 결국 한반도를 전쟁터 삼아 일본을 삼키려는 야욕에 한중전쟁이 시작된다.

예전에, 핵무기를 비롯한 파괴력이 막강한 신무기가 속속 개발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이런 저런 추측과 가설을 세워본 적이 있다.
한편에서는 파괴력이 엄청난 가공할 만한 전쟁 무기 때문에
이제 전쟁이 나면 피난갈 필요가 없다고 했고,
다른 편에서는 핵무기를 비롯한 신무기를 사용하면 지구 자체가 멸망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할 수 없어 국지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프콘>의 한중전쟁은 거대한 지상전으로 펼쳐진다.
영원한 아군도 적국도 없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과 실리를 먼저 계산하고,
한반도의 가진 자들, 힘 있는 자들은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나려 한다.

<데프콘>은 이 끔찍한 전쟁의 와중에도 소설의 미덕을 잊지 않는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위해 귀국하는 젊은이들과 대학생 해커들의 활동까지
거대한 중국에 맞서 사력을 다하는 약소민의 애국심이 감동적이다.

나라의 힘을 키우는 일에 소홀한 채
강대국에 기대어 일시적인 평화를 누리며 무사안일하게 살아간다면,
<데프콘>의 전쟁은 가능한 사실이지만, 결말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허구일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의 기반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러나 일단 소설로만 보면, <데프콘>은 한여름을 오싹하게 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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