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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정("No!")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이다.
엄마가 열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엄마는 길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때 술집에서 나오는 네 명의 사내들이 엄마를 강제로 차에 태워서 끌고 갔고, 엄마는 곳간에서 강간을 당했다. 그렇게 태어난 여자 아이는 열여덟 살인 지금, 고정 거주지가 없는 ’길 위의 소녀’이다. 쉽게 말해서 ’노숙자’이다. 원래 이름은 ’놀웬’이지만, 모두들 그냥 ’노’(No)라고 부른다.
’천재 소녀’로 불리며 두 번이나 월반을 한 지적 조숙아 ’루’는 발표 주제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노숙자’라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버린 뒤, 발표를 위해 ’노’를 상대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루는 ’노’의 인생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발견한다. "인간은 6백 미터 높이의 마천루를 세우고, 해저호텔을 짓고, 종려나무 무양의 인공섬을 만들 수 있다. 유기적, 비유기적 대기오염물질들을 알아서 흡수하는 ’인공지능’ 건축 자재도 만들어낼 수 있고,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청소기나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저절로 켜지는 조명등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외곽순환도로 길가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다"(199).
그리고 사회에 소리 없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노를 만나기 전에 나는 폭력이 고함, 구타, 싸움, 피와 함께 자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폭력이 침묵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258).
루는 친구 ’노’와 자신의 집을 나눠 쓰고 싶었다. 루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세운다.
<도입부 : 나는 길거리와 쉼터를 오가며 사는 열여덟 살짜리 소녀를 만났다. 그 애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큰1번(테제) : 그 애가 힘을 얻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구체적인 논증과 실질적인 제안을 생각해둘 것.) 그 애가 우리 집 ’집무실’에서 지내면서 집안일을 거들면 된다.
큰2번(안티테제 : 스스로 반론을 제기해보고 그 반론들을 논박한다) : 물론 그런 아이들을 위한 특수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해서’ 우리는 그 애를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큰3번(종합) : 프랑스에는 20만 명 이상의 노숙자가 있는데 사회 복지로는 매일 밤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길에서 잠을 청하는 이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요즘은 날씨도 춥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죽어나간다.
결론 : 시도도 못 해볼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겁내고, 왜 더 싸워보지도 않는가?>(120-121).
월반으로 만난 같은 반 친구들의 육체적 성장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성장기 청소년 ’루’, 돌연사한 아기(루의 동생)를 잃은 충격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루의 엄마, 아버지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따로 살고 있어 혼자서 생활하는 루의 같은 반 친구 ’뤼카’, 그리고 루의 아버지까지, 이들은 모두 루의 부탁으로 아무 상관 없던 ’노’의 인생에 개입하게 된다.
나는 천재 소녀 ’루’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단숨에 읽으며 결말에 도달했다. 그러나 <길 위의 소녀>가 주는 감동적인 결말은 뜨거운 감동이 아니라, 온 가슴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감동이다. <길 위의 소녀>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현실을 빗겨나지 않는다.
바퀴벌레가 우글대는 추잡한 방구석조차도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사회에서,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복지시설조차도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다녀야 하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어서 취직도 할 수 없고, 부당한 착취를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는 노!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노는 끊임없이 "우린 함께인 거지?"라고 묻지만, "노도 우리의 가족이야"라고 외치는 건 루 하나뿐이고, 결국 노의 위태로운 희망은 "그건 네 인생이야"라는 차가운 외면에 갇히고 만다.
노의 인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건 네 인생이야’라고 외면한다면, 내가 환란을 당할 때에도 도와줄 자가 없고, 함께 울어줄 자가 없을 것이다. 항상 문제는 앎과 행동,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이는 것지만, 우선 나부터도 내 삶의 자리 한 켠을 내줄 여유가 없으니 호기롭게 큰소리를 칠 입장이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