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지음 / 샘터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엉덩이에 털이 났는지 찾아봐야겠다. 책 한 권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지치도록 또 그렇게 웃다가 울었다. 밤새말이다. 잠들기 전까지만 잠깐 읽으려고 한 것이, 책을 놓을 수 없어 내친 김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참 시원시원하게 썼다. 그런데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걸까. 유인촌 씨 차에 오줌을 싸버리고, 젊은 스님을 마음에 품은 이야기까지.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이런 친구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꽃을 보면 미쳐버릴 정도로 좋아서 엉엉 울어버리는 감성에, 나팔꽃 보고 싶다고 필리핀으로 날아가고 튀김 먹자고 일본 가는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달려가는 황당함에, 여리디 여린 내면이지만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정의감으로 제일처럼 달려들어 상대가 누구든 패대기를 쳐버리는 깡다구에,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너그러움을 지녔지만 예의 없는 후배의 인사는 받지도 않을만큼 '아니다' 싶은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No'를 말하는 분명함에, 언제라도 바리바리 맛난 반찬 흐드러지게 차려놓고 함께 먹자는 친구. 그 앞에서라면 몇 공기씩 밥을 먹게 되는 편한 친구말이다.

그녀가 간직한 아버지와의 추억이 나를 몹시도 울린다. 그녀의 아버지! 고구마 수십 가마니를 캐 팔아서 번 돈을 들고 군산 시내 양장점으로 가서 '뺑그르르 돌믄 팍 양산처럼 퍼지는 후랴스커트(플레어스커트)'를 사주신 아버지. 또래들이 '가겨거겨' 배울 동안 <님의 침묵>을 사다주셔서 "아버지, 너무 어려워유. 내 나이에 맞는 책을 사줘유" 하면, "선구자는 앞서 가는 겨" 딱 한말씀 하셨던 아버지! 서울로 전학 온 학교에서 '애들이 전라도 개똥새 촌년'이라고 놀려 먹어서 그냥 확 군산으로 내려가 버리겠다고 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보낸 전보. "내 강아지야, 니가 촌년은 건 사실이제. 하지만 만약 니가 도둑질을 안 혔는디 도둑이라 허믄 아부지가 첫차로 올라갈껴. 서울 것들, 공부로 뭉개 부러." 단 하루만이라도 다시 아버지와 보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녀의 절절한 그리움이 나를 울린다. 아-!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배우 김수미. 원래도 김수미 선생님의 연기를 좋아했는데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서 홀딱 반해버려 김수미 선생님이 나오는 작품은 일부러 챙겨보는 열성팬이 되었다. 김수미 선생님이 연기하는 독보적인 캐릭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왜 작가 김수현 선생님은 '배우 김수미'에게 배역을 주지 않고 심지어 인사조차 달갑게 받지 않으시는지 나도 궁금하다.) 이제 나는 '배우 김수미'뿐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쓰는 작가 김수미'에 더 열광하는 광팬이 되었다.

위기일수록 강해지고, 무섭게 힘이 솟는다는 김수미 선생님!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그 어떤 분이 주신 용기보다 값지고, 빛나는 감동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진짜로 연락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예쁜 꽃을 볼 때마다, 꽃 앞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한 아름다운 여인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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