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과거(상처)를 지우려는 여자, 
그 여자의 과거 때문에 헝클어진 자아라는 상처를 안게 된 또다른 여자!

 

 

 

"내가 바람피랬지, 연애하랬어? 
바람은 그냥 바람이지만, 연애는.. 뵈는 게 없어지잖아. 지금 너처럼!"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 나왔던 대사이다.
'남자'는 바람을 피고, '여자'는 연애를 하나 보다.


왜, 여자는 유부남과 불안한 연애를 할까.
왜, 남자는 가정을 버릴 생각이 없으면서 바람을 필까.


<8일째 매미>, 이야기는 미스테리한 납치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와코는 그 사람 아기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걸로 전부 다 끝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기의 얼굴을 본 순간, 품에 안은 순간,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 아기를 감싸 안고 무조건 뛰었다. 아기를 안고 그 아파트를 나왔을 때부터 그녀는 줄곧 도망치는 삶을 산다. 기와코는 유부남과 연애를 했고, 버림받았다. 남자는 낙태를 종용했고, 그의 아내는 아기를 낳았다. 기와코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빈껍데기"라고 빈정대는 그의 아내의 말이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격분했다! 기와코는 왜 그 말에 그토록 상처를 받았을까.

이야기가 다 끝나갈 때까지 납치한 아이에 대한 집착만큼 자신을 버린 남자와 그의 아내에 대한 증오심이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녀는 후일에 이렇게 반추한다. "남을 미워하다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동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빈껍데기가 되었"(343)다고. 텅 비고 바짝 마른 매미의 허물처럼.

<8일째 매미>는 기와코의 이야기를 느닷없이 끝내고, 기와코가 납치한 아이가 어른이 된 18년 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납치된 아이'라는 헝클어진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녀도 유부남과 연애를 하고 그의 아기를 가졌고,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우려고 결심한다. 

'납치된 아이'는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그들과 진정으로 가족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 즉 납치된 채 살았던 어린 시절과 마주함으로써 증오와 공포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가족"(293)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래, 다 잘될 거야. 엄마다울 수 없었던 엄마와, 누구를 엄마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와, 태어날 아기를 키우자. 아빠라는 자리에서 언제나 달아나려고만 했던 아빠에게, 아빠처럼 아기를 귀여워해 달라고 하자"(332). 

작가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 모두 인생을 납치당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어디서 누구의 손에 키워졌든, 그 과정이 조금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인간은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가 보여주려 한 것은 '에리나'의 선택이었을까. 기와코는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가족마저 부정하는 공동체 '엔젤의 집'으로까지 흘러 들어가지만, 결국 그녀의 '도망'은 성공하지 못했다. 납치된 아기 '에리나'는 그 때문에 돌발적인 과거(상처)를 떠안게 되지만, 자신을 납치한 여자까지 엄마로 받아들인다.

<8일째 매미>, 7일만 살도록 주어진 운명 속에서 자신만 8일째에 살아남은 매미. "8일째"라는 것은 순차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운명의 시간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8일째의 마지막 몇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7일 만에 죽은 매미보다도 8일째에 살아남은 매미가 더 불쌍하다고, 네가 그랬잖아.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8일째에도 살아 있는 매미는 다른 매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을 꼭 감아야 할 만큼 가혹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318-319).

여성 문제를 다룬 여성소설, 성장소설, 연애소설 등 다각도로 읽을 수 있는 <8일째 매미>는 감각적이고 치밀한 여성의 내면 묘사와 함께, 여성의 다양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끌어올리는 시사성도 강하다. 차분하고 조용한데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어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다양한 주제가 여러 각도에서 복합적으로 만나고 있어 읽는 사람마다 주목하고 느끼는 부분이 다양할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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