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힌트는 제목에 있다!


이 책은 여러 모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장미의 이름>이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이라면,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도시 내지 국가로 확장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이다.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한 의문의 살인자"는 잔혹할 수 있는 모든 살인 수법을 동원하여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지른다. 살해의 유일한 일관성은 신체 부위의 적출이다. 이것은 그의 범행이 살인행위 자체보다 연출에 목적이 있음을 나타낸다. 일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살인자, 그래서 더 섬짓하다.

살인 사건을 추척하는 주인공은 우리에게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이다. 이제 갓 스무 살 청년이 된 마키아벨리.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의 마키아벨리와 실제로 극단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했던 도미니쿠스회 수사 사보나롤라, 피렌체에서 종신 최고행정관에 선출되었던 소데리니 등이 소설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처럼 역사적인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쓰여진 소설은 문학적 미학 외에도 역사와 실존 인물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가의 시각이 '이야기'(story)에 '의도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 지식이 독서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더구나 이 책처럼 '미스테리 소설'을 읽을 때는 역사적 배경 지식이 작가가 설치해놓은 트랩이나 설정을 간파하고, 작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는 강력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자체 이야기만으로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소설의 장점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가진 미스테리 소설을 직접 추적하며 읽고 싶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눈물> 배경이 되는 "1498년 당시 피렌체는 50년간 4대에 걸쳐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가가 실권하여 추방당한 후 피렌체 공화정이 수립됐지만, 프랑스, 로마교회, 신성로마제국 간의 세력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언제 꺼질지 모르고 흔들리는 풍전등화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380). 

작가는 이러한 시절을 보내는 청년 마키아벨리의 '눈물'을 보여준다. 사악한 정치가로 기억되는 그의 이미지와 '눈물'은 이율배반적이다. 그의 눈물은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키아벨리즘' 탄생의 양분이기도 하고, 또 그 '마키아벨리즘'의 원뜻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끊임없는 외세의 위협과 국내 정치의 혼란 속에서 하나의 군주 아래 통합된 강력한 이탈리아 건설을 열망했던 마키아벨리의 꿈과 닿아 있다. 실제로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가 마키아벨리의 눈물을 훌륭하게 연기한다면 아마도 관객은 역사적인 '악인'에게 깊은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역사적인 증언에 의하면,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악한 이미지와는 달리, 자신의 영혼보다도 피렌체를 사랑했으며, 너그럽고 정열적이며 기본적으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15세기 피렌체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반영하며 권력의 속성과 비밀을 노출시키고 있다. 소설적 재미를 느끼기에도 충분한 미스테리이지만, 권력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오늘의 우리 상황에 대입하며 읽어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한가지,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이라는 문구에는 크게 현혹되지 않는 것이 좋다. 나처럼 '극적인 반전'을 너무 염두에 둔 나머지 추리력을 총동원하여 작가보다 앞서 상상하고 결말을 예상하느라, 정작 '반적'에 맞닥뜨렸을 때는 오히려 '허무'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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