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호, 
내용이 상당히 불온하다 : 볼온(不穩)서적, 불온한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책.

이 책은 상당히 불온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었는데, 책의 끝에 소설가 이인화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쓴 글에 "배명훈의 <타워>는 날카롭고 불온하다>라고 첫 문장을 날려주시어 적잖이 실망했다. 내가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 말의 요지는, 내가 이인화 선생님의 표현을 빌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권력층이나 여러 기득권층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책이 불온서적이 맞다면, 이 책은 상당히 불온한 책이다. 2008년도에 국방부가 군인들 읽지 말라고 불온서적 23권을 지정해서 시끌시끌 했다는데, 내가 읽기에 이 책이 그렇게 불온하다.

674층 높이에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거대한 '타워'가 있다. 이 지상 최대의 건축물, 타워의 이름은 '빈스토크'(Beanstalk), 동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까지 치솟은 그 콩줄기를 닮은 이름이다. 이 빈스토크는 어느 나라의 수도에 위치해 있는데, 특별 투자구역 지위에서 특별 자치구역 지위로 격상, 이듬해 역사상 최초의 타워 도시국가로서 대내외적인 주권을 인정받은 독립 정치제이다. 독자적인 군대도 있고, 의회도 있다.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인공위성 사업을 중심으로 우주 관련 첨단 서비스의 메카로 군림하고 있다.

<타워>는 이 빈스토크 안에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이다. 여섯 가지의 단편은 서로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빈스토크 안에서 서로 맞물려 있다.

1978년생 저자 배명훈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정도 학력이면 빈스타워에서 적어도 30층 이내 구간을 오가는 단거리 엘리베이터를 탑승할 수 있는 승차권 한 장, 즉 수직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왜 이런 불온한 책을 썼을까? 이제는 서울대 학벌만으로는 빈스타워 입국 자체도 어려워질 정도로 대한민국 빈스타워의 국경이 견고해졌는가? 사상 검증 없이, 빈스타워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 책 한 권으로 그는 단 번에 고층으로 수직상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변국가의 땅에 서 있으면서도, 주변국가와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주제에, 언어와 민족 구성이 똑같은 주변국 사람들에게 비자 면제 혜택조차 주지 않는 '빈스타워', 이곳은 기득권을 가진 그들만의 공화국이다. 이 <타워>의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실제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하게 그렇게 글을 썼다.

'미세권력연구소'는 현 시장 체제의 권력 구조를 파악한 다음 선거전 막바지에 그 결과를 적극 활용하려는 계획을 가진 야당 선거사무소측의 의뢰로, 빈스토크 내의 권력장, 즉 권력 분포 지도를 그리기 위해 실험을 한다. 그런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영화배우 P의 정체가 네 발로 걷는 '개'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연구는 길을 잃고 헤매는데, '미세권력연구소'의 실세인 정 교수의 두 번째 아내가 '시장 닮은 아이를 덜컥 해산한 날 밤에'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첫 번째 이야기이다.

"공권력이 불러온 냉혹한 겨울은, 겨우 목숨 하나 진실 하나 짓이긴 것에 불과하다고 해서 결코 차갑지 않은 것이 아니다"(70).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해도 "악" 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는 세상이다. 모르고도 당하고, 알고도 당하는 세상이다. 알아도 말 못하고, 말해도 소용없는 세상이다. 기득권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 하나 진실 하나 쯤 짓이겨져도 괜찮은 세상이다. 

지금 <타워>는 저항보다 로망이 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살지 못해 모두 안달을 하고. 어디선가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외침이 들려오는데, 마음은 회의로 가득찬다.

전에는 이런 불온한 서적을 읽으면, 오래도록 분노와 저항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지만, 요즘엔 재밌게 읽고 잠을 잔다. 정리해고된 쌍용자동차 한 노조원의 가족이 항의하다 오열하며 땅바닥에 쓰려져 있는 사진을 보고, <타워>를 빚대어 날카로운 한마디를 하고 싶은데, 생각이 멈춘듯 멍하다. <자연예찬>의 K처럼 공권력이 나의 먼지를 털 것도 아니지만, <타워>를 읽고 날카롭다, 재밌다, 씁쓸하다를 말하는 것이 생각나는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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