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안이루, 그대 때문에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 있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 가듯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이승철이 부른 <네베엔딩스토리>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으면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된다.
글로 적고놓고 읽으며 애절한 노랫말에 담긴 사연을 혼자 상상해본다.
세상 모든 유행가의 가사가 대부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때 사랑을 하고 있었던가?

인류는 언제부터 ’사랑’을 노래했을까?
천 년 전의 사람들은 ’사랑’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사랑’ 노래이다.
우리는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블랙 커피를 앞에 놓고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진한 향이 퍼지는 쟈스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첫 만남에서부터 격정적인 사랑이 지난 후의 여운까지를 음미하는 책이다.
손을 데워주는 찻물이 서서히 식어가고, 
콧끝을 자극하는 쟈스민 차 향이 마음에 스며들며 사그라지도록 들도록 말이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중국의 고전 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음미’하는 책이다.
청량한 고전의 시가 동양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어로 새롭게 재생된다.
저자 ’안이루’는 ’고전의 역사를 새롭게 쓴 신세대 여성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태어나면서 뇌성소아마비를 앓아 한때 자폐증을 앓기도 했다는 저자는
고전 시가를 현대적 감각으로 섬세하게 풀이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상당히 파격적인가보다.
이 책이 중국에서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고르고 풀이한 고전 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고전의 시에 주석 같은 풀이를 입히며 시를 해석하는 저자의 시각이 상당히 자유롭다.
작가의 사상이나 고전이 담고 있는 원래의 이야기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음미하는 시는 원 저자의 당시 상황과는 어떤 연관도 없게 된다.
옛 시인들과 교감하는 신세대 안이루의 감각으로
첫 만남, 영원을 맹세하는 사랑의 언약, 이별, 배신,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한 등
고전의 시가 담고 있는 사랑의 실체를 다각적으로 음미해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마음이 그윽하고 향기로웠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도 그러했다고 알려주고 싶다.
특히 천하를 품에 안고 오직 천하를 위해 춤추며 영웅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남자가
몰래 가슴에 품은 연정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사랑을 믿지 않는 내 마음도 잠시 흔들린다.
"그대 때문에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 있네."
조조도 이런 노래를 할 줄 알았다.

저자 ’안이루’는 컴퓨터가 앞에 있으면 검색창에
"한평생을 살면서 누구를 처음 만났던가?"를 입력하게 된다고 한다.
저자가 사랑의 처음을 묻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있다고 보기 때문일까?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는 알게 된다.
"뭇 사람들 속에서 수백 수천 번 그대를 찾았네"라고 고백하던 격정도,
영원을 맹세하는 사랑도 결국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우리들이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맑은 물과 깊은 산이 서로 어울리듯 서로 천 리를 따라갈 것만 같지만 
엇갈려 지나면서 천천히 세월 따라 잊히는 것처럼" 초연한 향기만 남는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어렸을 때 읽은 어떤 만화책에서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우리가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백 년도 못 살고 죽기 때문이야."

영원을 맹세한 그들의 사랑은 허망하게 끝났을지라도,
영원을 맹세한 그들의 노래는 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남았으니,
영원은 몰라도 천 년 쯤은 맹세를 하고, 천 년의 맹세는 믿어볼 일이다.

"어떤 사랑은 일생을 통해 잊어야만 하고, 한은 시간을 모호하게 만들 것입니다.
만약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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