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래식을 만나다
정인섭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극장을 자주 안 가는 편인데 선배 언니랑 극장에서 <사랑과 영혼>을 보고는, 거리에서 그 유명한 영화 주제가가 들릴 때마다, 음악이 다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에 그 영화 음악이 엄청나게 인기여서 나는 길을 가다 멈춰 서는 일이 잦았다. 음악과 함께 기억되는 영화의 감동이 음률을 타고 조용히 마음에 살아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다 말고 운동장 한 켠에 있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몰래 모여 수다를 떨고는 했다. 학교 담장 밑으로 레코드 가게가 있었는데, 그 레코드 가게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우리는 미리 약속했다는 듯이 갑자기 수다를 멈추고 함께 그 음악을 들었다. 가로등이 있고, 시원한 바람이 있고, 우정이 있고, 음악이 있고, 사춘기의 고뇌와 눈물이 있었던 그 등나무 벤치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있다. 기타의 선율이 정말 로맨틱하고 낭만적이었던 <로망스>.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의 감동은 삶의 일부로 남아 있고, 음악으로 기억되는 삶의 일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에 <로망스>는 영화와 추억, 모두를 간직한 가장 막강한 음악이다. <금지된 장난>, 언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로망스>라는 음악을 들으면, 흑백 화면과 십자가, 전쟁, 그리고 당돌한 꼬마들의 영상이 당연한 기억이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런데 이 흑백 화면 속에 흐르는 <로망스>는 그리 낭만적이지도 않고,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다. 잿빛 하늘처럼 우울한 음악이 된다.

그런데 <로망스>가 클래식이었나?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를 눈으로 읽으며, 또 책과 함께 딸려온 CD를 함께 들으며 한참 감상이 젖어 있다가 정신이 난다. <로망스>가 CD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로망스>가 클래식이었나? "로망스는 스페인 민요나 나르시소 예페스 작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작은 19세기 후반 스페인 기타리스트 안토니오 르빌러의 연습곡 중 하나인 아프페지오 연습곡으로 추측된다(!)"고 한다(28).

마로니에북스의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는 이제는 거의 고전으로 통하는 유명 영화 26편과 영화와 찰떡궁합으로 삽입된 클래식을 음반을 소개해주는 책이다. 26편의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디어 헌터, 아웃 오브 아프리카,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이 인상적이다.

26편의 영화는 내가 거의 장면을 외울 정도로 몇 번을 반복해서 본 영화도 있고, 보지 못한 영화도 있는데, 모두 이름은 들어본 영화이다. <디어 헌터>,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영화로 기억되는데 완전 몰입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쇼생크 탈출>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시는 아빠 덕에 몇 번을 봤는지 셀 수도 없고, <작은 신의 아이들>은 포스터로 기억되는 영화인데, 나는 이 영화 포스터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별명을 얻었다. 우리는 내용도 모르면서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영화 제목을 좋아했고, 친구들이 내게는 특별한 행운이 늘 따라다닌다고 해서 이때부터 '신의딸'이라고 불렀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내 인생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이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이 책에 실린 26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우선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는 영화에 대한 작가의 짧지만 인상적인 해석과 함께 핵심적인 영화 줄거리와 영화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이나 반응, 또 재밌는 에피소드를 함께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사운드트랙과 추천 음반을 소개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추억과 함께,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명작과 명곡이 만나 탄생한 종합예술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영화와 음악이 흔해져서 요즘은 감동이 긴 여운을 남길 새도 없이 금새 잊혀지지만, 여기 있는 영화와 클래식들은 느리게 흐르는 큰 강물처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과 선율로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에 흐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를 영화 이상의 무엇으로 만들어준다는 작가의 증언이 '참'인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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