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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 달 뜨면
백동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슬프거나, 분노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실 규명.
요즘 이 말처럼 맥 없이 느껴지는 말도 없다.
거대한 권력 앞에 힘 없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는
아닌 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말 못하고,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옳지 않다고 말 못하고,
옳은 것도 옳다고 말하지 못한다.
미친 사람처럼 크게 떠든다 해도 들어줄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귀하게 태어났든 천하게 태어났든 제 한 목숨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힘이 있든 없든 이유없이 짓밟히고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다면
억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가해자를 찾아내어 똑같은 고통을 안겨 주는 것?
아니면 잘못을 시인하게 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하찮게 여겨진 목숨이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목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역사 속에서 은밀하게 자행된 만행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실 그대로
온 천하가, 아니 누구라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보리밭에 달 뜨면>은 일제치하 시절 "소록도에서 자행된 한센인 생체실험"을 고발하는,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1만 이상이 생체실험으로 끔찍하고 참혹하게 죽어갔는데도,
그 진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아니, 관심조차 갖는 사람이 없다.
저자 백동호는 영화 <실미도>의 원작자이다.
백동호는 <실미도>만큼이나, 아니 <실미도> 이상으로 불쾌하고 끔찍한,
그리고 누군가가 역사에 묻어버린 그 어둡고 불편한 진실을 캐내기 위해
10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고 한다.
잠깐 딴소리를 하면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문교부(학교)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법무부(교도소)에서 3천 권이 넘는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한상혁이 살인으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교도소 안에서 생활하는 캐릭터들의 그 리얼하면서 풍자적인 대사가 압권이다.
"참고 살다보면 시어머니 죽는 날도 있더라고,
징역을 오래 살다보니 너 같은 놈도 만나는구나."(그중 가장 점잖은 표현으로 골랐다.)
비유와 직유가 하도 기발해서 참혹한 내용이지만,
웃음으로 독자를 흡입하는 힘도 함께 지녔다.
저자는 <보리밭에 달 뜨면>에 인용된 신문기사, 잡지기사, 여러 참고문헌,
관련자 증언, 시대 상황 등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여 사실 그대로 옮겼다고 밝힌다.
그래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은 고통스럽다.
주인공 한상혁은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 귀하디 귀하게 자랐다.
그러나 소학교 5학년에 천형이라고 하는 한센병이 발명하여
이후로 그의 삶은 좁고 어두운 ’다락방’이 전부가 된다.
나환자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적인 거부반응은 일본과 한국이 유난하다고 한다.
그 주된 이유는 두 나라에만 나병에 인육이 특효라는 민간 속설이 전해져 왔고,
실제로 나환자들의 식인사건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란다(66).
일본의 정치인들이 나환자 강제격리 수용을 고집한 배경이 이것이다.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서도 나환자 강제수용소를 건설한 장소가 물색 되었는데,
그때 낙점된 곳이 바로 소록도이다.
소록도가 낙점된 표면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직접적인 이유는 나환자들이 도망치기 어려운 ’섬’이라는 데 있었다.
다랑방에 갇혀 살았으나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한상혁은
’나환자들의 낙원’이라고 하는 소록도로 스스로 찾아간다.
나병 발병 이후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고, 그곳에서 사랑도 하게 되는 한상혁.
그 짧은 행복과 사랑이 아프고 눈물겹다.
그들은 어떤 돌팔매질을 당하고, 천대를 받아도,
그렇게 어울려 ’인간’으로 살기를 꿈꿨으나 세상은 이미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신축된 감금실, 그곳에서 벌어진 생체실험은
너무나 처참해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슬프거나, 분노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다시 묻어두거나, ...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상혁은 소록도를 탈출했지만,
나병 환자에 대한 저주와 무조건식 적대감에서는 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형 가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호소한다고 했던가.
해와 하늘빛이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꽃처럼 붉은 울음이 밤새,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만 같다.
한국 사람만의 단어라는 그 한(恨)으로 썩어 문드러진 온 몸과 마음으로 말이다.
해하는 자와 당하는 자보다 지켜보는 자의 고통이 더 크다고 하면 오만일까.
영화 <실미도>를 보고 며칠 잠을 자지 못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이런 삶도, 이런 생명도, 이렇게 서러운 사실도 존재하는 구나,
그리고 그것을 캐내고 알리는 사람도,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도 존재하는 구나,
그렇게 며칠을 생각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