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의 상징성을 열심히 추측하며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는 ’느닷없이’(!) 맞이한 통일 대한민국의 혼란한 상황을 예측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장미빛 몽상을 걷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후, 가벼운 마음으로 마주한 ’작가의 말’은 이 책의 주제에 대한 내 모든 결론을 헝클어버렸다.

2011년 5월 9일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하였다는 설정과 (내가 읽어내기에) ’느닷없는’ 통일이었다는 강조점, 그리고 그로 인한 혼란과 갈등은 주제가 아니라 문학적인 견지의 소재, 다른 말로 이 책의 ’모티브’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범죄의 장면들로 가득한 소설을 만들면서 나는 질문했다. 무엇이 죄인가? 살인? 누가 악인인가? 살인자? 혼돈 속에서도 제 정체성을 회의해 보지 않는 것이 죄이고 그러한 그가 악인다. 혼돈 속에서 살면서도 그 혼돈 자체를 부인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 죄. 혼돈을 치장해 장사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척하는 죄. 그러다가 스스로 더 무지막지한 혼돈이 되는 죄. 나는 누인가를 왜곡하는 이런 식의 저 모든 뻔뻔함들이 처세를 신념으로 위조하고 위선을 격조로 착각하게 한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간에"(p. 260).

<국가의 사생활>은 작가의 설명대로 "인민군 출신 폭력 조직의 내부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남한에 자리잡은 광복빌딩, 이곳에 자리 잡은 ’은좌’는 이북의 아가씨들을 모셔다 놓고 철저한 회원제로 관리되는 최고급 술집이다. 은좌를 운영하는 ’대동강’은 인민군 출신 폭력조직이다. 그들은 지하에 시체를 태우는 화덕까지 갖추고 그들만의 체제와 법으로 은밀히 조직을 운영해나간다. 

준비 없이 맞이한 통일 조국의 현실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느닷없이 무장해제된 이북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남으로 내려오지만, 그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잃어버린 반쪽의 진실"이다. 인생을 설계하는 견고한 틀이었던 사회 체제가 무너지고, 핵탄두마저 미국에 빼앗긴 이북의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이남과 만나 "무시당하고 우리답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며 좌절한다.

이러한 사회와 조직 안에서 생명이 위태롭고 정신이 위태로운 주인공 ’리강’이 등장한다.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주제로 리강을 다시 재구성하면 이렇다. 리강은 절대적인 것에 믿음과 신념을 상징하는 이북의 미신과 이남의 기독교를 모두 거부한다. "신앙은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님으로써 강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너를 죽일 것이다"는 찜찜한 예언 하나가 그의 내면을 괴롭힌다. "너를 너를 죽일 것이다"라는 이 수수께끼같은 예언은 바로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살인 사건 안에 감춰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리강은 "저 여자가 나 같다"고 느끼는 여자(윤상희)를 만나고, "내가 되려고 하는 한 남자(오남철)"의 실체를 알게 된다. 리강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결국, 이 혼돈은 "나인 네(윤상희)가 자신을 죽이고 (그를 통해 나이고자 하는 오남철을 제거함으로) 너인 나를 구한 거야"라는 결말을 맺는다. 작가 자신의 해석에 따르면, 이남의 시끄러운 괴변을 대표하는 이선우는 "저 여자가 나 같다"고 느끼는 리강에게 "내가 너고 네가 나인 건 사랑인 거야"라고 알려주고, 이북의 정신을 대표하는 남기정은 리강에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주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정체성의 회복을 ’자신이 운명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 즉 자주적인 삶을 사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작가는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환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상처와 후회를 거절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고통의 비등점에 서 있는 영혼이 되라고. 통일 조국이 겪는 "거시적인" 혼란의 소용돌이는 그대로 "미시적인"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사생활은, 국가 안에 살아가는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완벽한 국가 없듯이, 완벽한 개인의 삶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개인의 삶이 없기 때문에, 그 총합인 국가도 완벽할 수 없는지 모른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란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든, 나 자신 안에서든 스스로를 속이며 ’매몰’되는 않는 것,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작가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교육받아온 ’통일 조국’에 대한 당위성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체의 것을 회의하도록 하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에 매몰된 현대인들의 소유욕은 ’물질세계’에 대한 집착만큼, 상대적으로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국가의 사생활>은 철학의 출발이 되었던 그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물음 앞에 우리를 다시 끌어다 앉힌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도달하기까지 어쩌면 <국가의 사생활>이 보여주는 또하나의 장치는, 이남은 이미 정신을 잃었다면, 이북은 왜곡된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이 다른 거대 사상과 물질세계와 충돌하며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국가"의 혼란상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다가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추측에 확신을 주는 요소는 이북의 ’장군도령’(미신)과 이남의 기독교를 배치해둔 것이다. 영적이면서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집단적 믿음과 신념을 대표하는 이 두 가지 요소는 당위적인 것을 교육(세뇌)하는 실체(세력)에 대한 의심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과학성을 잃어버리면 철학은 진리의 나침반이 아니라 악마의 입술이 된다"(p. 180).

단순하게 읽지 않고, 지나치게 작가의 의도를 의식한 나머지 너무 제멋대로 작위적인 설정과 해석을 도출하지 않았나 걱정스럽다.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에 대해 작가는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토론해보고 싶은 소설이다. 이북 사람들의 말투가 맛깔나고 신선하며,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도 거대한 음모를 품고 있어서, 이런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재밌는 소설로 읽기에도 충분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