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조각난 삶이 꿀벌의 공동체성을 통해 창조의 생기를 얻다.

나는 [꿀벌의 집] 작가 ’가토 유키코’를 기억하려고 한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그녀의 순한 필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의 빗장이 열린다. 그녀는 정렬적이고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강력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싱그러운 초록잎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주인공 ’리에’의 조각나 버린 마음의 파편이 <꿀벌의 집>을 통해 약동하는 ’하트’(heart)로 서서히 복원되는 과정 속에서 덩달아 나도 생기를 느낀다. 그 생기는 태초에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셨던 창조주의 생기이다.

텅빈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는 주인공 ’리에’의 모습은 무기력해보인다. 창으로 민트향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드는 데도 그녀에게서는 어떤 활기나 에너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가 도시를 떠나 돌연 이 텅빈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은 도시의 삶에,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는 삶에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상은 키를 잃어버린 배처럼 사람들 사이를 둥둥 떠다니고, 그녀의 마음은 고립된 섬처럼 적막하다. 그녀의 마음을 조각낸 것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자살해버렸고, 엄마는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동거했던 남자는 "미안해, 좀 지나면 꼭 돌아올게"라고 말하며 가버렸고, 가장 친한 친구는 자신이 바로 그 남자와 지금 사귀고 있다고 고백한다.

인터넷으로 구인 광고를 보고 태고적 자연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속으로, 문명사회를 한참 벗어나 낯선 세계를 향해 가는 리에처럼, 나도 도시와 문명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면 시커먼 때가 붙어나오는 더럽고 오염된 도시 공기가 싫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다. 그 많은 사람 사이를 혼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싫다. 발을 밟고, 어깨를 치고, 몸을 밀치면서 지나는 사람들의 무례함이 싫고, 그 무심한 표정이 싫다. 생각할수록 숨이 막힌다.

미친 속도로 돌아가는 도시에서 우리 삶은 분해하고 해체되면서 급속하게 개인화되어간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맞춰 삶의 계획이 구성되고,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반복되는 노동을 한다. 그렇게 지쳐가는 틈에 오로지 자기의 욕구에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의 욕구를 채워줄 것을 요구하며 싸우고 상처를 입힌다. 자신의 욕구 안으로 그렇게 서서히 고립되어가면서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우리는 병리적 외로움에 신음하며, 다시 ’사랑’을 열망하는 모순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 카토 유리코의 [꿀벌의 집]은 꿀벌의 생태를 통해 우리의 파편화된 관계와 삶을 다시 복원시키는데, 그것은 바로 꿀벌의 공동체성을 통해서이다. 리에가 새로운 환경과 일자리를 얻기 위해 찾아간 <꿀벌의 집> 사람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안고 있다. 그러나 "꿀벌"을 돌보는 그들의 생활은 활력과 생기가 가득하다. 

(좀 억지스러울지는 모르지만, 순전히 주관적인 해석에 의하면) <꿀벌의 집> 사람들과 리에가 과거에 알던 사람들은 대치 구조를 이룬다. 한없이 의존적이면서 알코올 중독 증세까지 보이는 리에의 엄마와 대치되는 사람은 손목에 자살의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꿀벌의 집>을 이끌어나가는 생활력 강한 여사장 ’기세’이다. 기세는 리에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양봉을 배우면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꿀벌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애인과 사귄다고 고백한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와 대치되는 인물은 거식장애로 마음의 문을 닫은 어린 동료 "아케미"이다. 까칠한 아케미이지만, 리에에게 꿀벌 키우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면서 가까워진다. 그 둘은 ’리에, 아케미 팀’이 되어 꿀벌을 딸기 농장으로 싣고 가는 여행을 통해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과 환희를 맛보며 우정을 쌓는다. 보호자와 같은 인상을 풍기며 리에를 자신의 방법대로 취직시켜준 아버지의 친구는 폭주족 출신 ’겐타’와 대치시면 어떨가 한다. 다소 거칠지만 겐타야말로 꿀벌을 키우는 일에 리에의 진정한 보호자 역할을 해주니 말이다. 

이밖에도 하나밖에 없는 딸 아이가 바다에서 죽었는데, 그 딸 아이를 그리워하며 아예 바닷가로 이주해 민박을 운영하며 사는 부부와의 만남은 자살한 아버지를 원망하는 사는 리에의 마음과 대치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마치 꿀벌의 공동체 생활처럼 <꿀벌의 집> 사람들과의 공동생활을 통해 리에는 삶의 활기를 회복한다. 꿀벌의 생태는 우리에게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함께,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꿀벌의 집> 사람들의 생활은 꿀벌의 생활과 꼭 닮아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저마다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하다. 그들은 각자 움직이면서 또 함께 움직인다. 모두의 역할은 제각각이지만 <꿀벌의 집> 공동체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모두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무기력한 사람들이 생존의 열기 가득한 새벽시장에서 에너지를 얻고, 요란한 삶에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요한 무덤 앞에서 욕심을 덜어내듯이, [꿀벌의 집]은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통해 생명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이 책은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소설", 바로 그것이다! 알코올에 의지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리에 엄마가 <꿀벌의 집>을 통해 자신의 할 일을 찾고 삶의 활력을 얻은 것처럼, 진정한 삶의 의미와 생기는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 주어진 자신의 빛나는 역할 속에서 찾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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