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ㅣ 환상문학전집 10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4월
평점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은 원제 그대로다.
멋진 시의 한 구절 같은 제목을 보고 책의 내용을 여러 가지로 상상했었는데,
이 책이 엄청난 수식어가 달린 SF 소설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세계 3대 SF 작가로 꼽히는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대표작!
(저자는 미국 SF작가 협회로부터 첫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휴고 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프로메테우스 상 명예의 전당!
지구로부터 독립하려는 달 세계의 투쟁을 다룬 기념비적 SF!
이런 화려한 수식어와 더불어 나의 기를 질리게 한 것은 575 페이지에 다라는
엄청난 분량의 장: 편 소설이라는 것이다.
미래 세계를 이처럼 장대한 스토리로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필력이 감탄스럽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작가의 굉장히 여유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작가는 여유로운 유머를 구사해가며 글의 템포를 유지한다.
(명대사로 꼽을 만한 멋진 표현들이 많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달의 세계를 밀착하여 관찰하듯
작가는 귀찮은 기색도 정밀하게 묘사해낸다.
어패가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빨리 달리는, 뭐 그런 기분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지구의 식민지가 된 "2075년의 달"이다.
지구의 식문지가 된 달 세계는 범죄자나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달 세계는 지구와 전형적인 착취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총독의 압제와 지구와의 불공평한 교역 조건으로 달 세계인들의 고통이 점점 커져간다.
정부를 규탄하는 비밀 집회가 열리고, 유혈 진합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 사건에 컴퓨터 기술자 마누엘이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마누엘은 달의 전자 시스템 전체를 관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마이크’와 친구이기도 하다.
1개 연대분의 천재보다 똑똑하고 유머도 구사할 줄 아는 슈퍼 컴퓨터 마이크와
열성적인 혁명 여성 와이오밍,
그리고 혁명의 방법론에 해박한 무정부주의자 데 라파즈 교수가 가세하여,
무자비한 생존 환경에서 고통받는 달 세계의 독립 투쟁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세계, 수퍼 컴퓨터, 얼음 광산, 중력 터널 등 과학적인 통찰력과
혁명의 방법 대안 가족, 여성의 지위, 대리모 등
미래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상상이 빛나는데,
특히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가족’에 대한 그의 예견이다.
작가는 ’공동 아내’, ’공동 남편’이라는 대안 가족 형태를 고안해낸다.
여성의 성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달 세계는 가계 결혼이라는 대가족 형태가 나타난다.
씨족 결혼, 집단 결혼, 일처다부형의 결혼제도와는 구별되는 가계형 제도는
세대간에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결혼 형태이다.
공동 아내와 공동 남편은 어느 한 쌍이 이혼을 해도 자녀들에게는 여전히 부모가 있다.
다소 황당하고 과장된 결혼과 가족 제도로 보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정말 좋은 결혼 형태, "즐거운 생활 방식"이라고 평가한다(p. 57).
요즘 처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대안 가족이 등장하는 시대가 아니라,
핵가족이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여겨지던 시대에
이러한 대안 가족의 형태를 고안해냈다는 것이 놀라운 따름이다.
거장의 작품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때로 거장이라고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