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다], 책의 제목이 멋지다.
그리고 책의 부제가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이다.
’경계문학’이 무엇인지 아는가?
’경계문학’, 이름은 생소하지만 거창하고 ’있어 보이는’ 장르라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두께가 상당한 제법 묵직한 분량의 책은
머리말도 없고, 인사말도 없고, 후기도 없이, 그렇게 아무런 설명이나 인사도 없이
목차 한 장 달랑 넣어주고, 바로 12작가가 쓴 총 13편의 단편 이야기로 직행한다.
(중편이라고 할 수 있는 제법 긴 분량의 이야기도 있다.)
나는 책은 받아든 뒤에야 도대체 ’경계문학’이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사전적인 의미 설명도 찾지 못했고,
경계문학이라는 장르의 탄생 배경을 설명해주는 글도 찾지 못했고,
명확한 구분을 설명해주는 글도 찾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글을 통해 대략 ’판타지’와 ’무협’이라고 분류되는 작품을
일컫는 개념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다.
나는 좀 당황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서양의 판타지는 오히려 익숙한데,
한국의 판타지는 잘 모르겠고,
무협은 만화로 나온 <열혈강호>, <용비불패>, <북두신권>을 읽으며
여름방학 한 철을 보낸 오래전 기억이 전부이다.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서양의 이야기만큼이나,
공중을 날아서 걸어다니는 강호의 절대고수가 ’사파’와 싸움을 벌이는 ’무협’도
같은 동양권이기는 하지만 중화권의 이야기라고 생각될 뿐,
’우리의 정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무협은 ’츄리닝 패션으로 대표되는 ’이태백’들이
만화방에 앉아 읽는 바로 그 책’이라는 희화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보통 할 일 없이 노는 청춘들이 즐겨 찾는 책으로 설정된다.)
수준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우받지 못하는 일명 ’B급 문화’.
그런 ’B급 코드’의 소설이 바로 ’경계문학’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내게 온 것이다.
왜 ’경계문학’이라고 이름 지었는지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이다.
그동안 너무 무게운 주제를 다룬 문제의식 가득한 책만 읽어서그런지,
나는 [꿈을 걷다]에 수록된 13편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즐겼다.
오랫만에 읽는 즐거움에 흠뻑 빠진 것 같다.
빽빽한 ’교훈’을 담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가르치려 드는’ 엄숙한 이야기들을 향해
마치 소설 읽기의 최고 미덕은 ’즐기는 것이다’라고 비꼬아주는 것 같다.
나는 경계문학의 장점을 ’방대한 스케일의 스토리 구성’과 ’신선한 캐릭터’로 꼽고 싶다.
리얼리티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현미경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밀착된 묘사가 아니라,
다소 허황되고 과장된 세계와 캐릭터를 넘나들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계의 구원자>는 장르를 구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꽃배마지>가 들려주는 애틋한 사랑은 여느 로맨스 소설에 뒤지지 않는 감성을 지녔다.
<11월 밤의 이야기>는 ’네버엔딩스토리’를 연상시킨다.
<월아 이야기>는 내게 이병헌 주연의 르와르 액션 영화 ’달콤한 인생’과 오버랩된다.
<두 왕자와 시인 이야기>, 그리고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는
그 내용이 상당히 철학적이다.
경계문학이 내게만 낯선 문학인지, 아직은 대중들에게도 낯선 분야인지 잘 모르겠지만,
문학의 한 장르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현상계를 초월하는 스케일과,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방대한 스토리와,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캐릭터와
문체의 수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한 ’재미’를 볼 때,
순수 문학이 긴장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