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매일 정답을 찾아 헤맨다. 무엇인가에 끌려다니며 사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자주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분과 초를 다투는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건 아닌데!’ 하는 공허한 목소리가 가슴 가득 차오른다. 내면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건 아닌데’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나의 일상은 모두가 옳다고 믿으며 걷는 그 평범한 궤도에서 한발짝도 옆으로 빗겨나지 못하고 있다. 때때로 멈춰 서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나를 사로잡지만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고 또 그렇게 하루를 산다. 모두가 보기에 안전하게!

그래서인지 학교 다닐 때, 늘 튀는 행동으로 '명물'이라거나 '기인'으로 분류되는 독특한 친구들을 유독 좋아했었다. 고등학교 때, 기껏해야 몇 번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연극을 보러 가거나, 
수업시간에 몰래 책상 아래 소설책을 숨겨 놓고 읽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이었다. 그런 내게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개성 강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나, 금기와 일탈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내게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화가 김점선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글이요, 또 자신의 전기라는 뜻에서 [점선뎐]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옥단춘뎐, 숙영낭자뎐과 같은 맥락에서 스스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내가 읽은 그 어떤 위인의 전기보다 감동이 있고, 내가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하면서 재밌다. 책을 읽은 뒤, 나의 모든 화제의 중심에는 늘 그녀가 있다.

화가 김점선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이한 사람 중에 가장 매력적인 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만으로는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할 독보적인 캐릭터이다. 충동은 있지만, 내면과 실행력이 약한 나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삶을 그녀는 과감하게 살아냈다. 색감을 중요시한다는 그녀의 그림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가 돋보인다. 이 화려한 색채와 함께 내가 화가 김전선의 그림에 끌리는 것은, 평면적 구성으로 담아낸 그림의 대상들이 어린 아이가 그려내는 상상의 세계처럼 천진함을 가득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일상도 이런 기발함과 천진함으로 가득하다.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처음 본 남자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과 결혼해야지 결정을 해버린다. 그리고 그날 함께 자고, 그 사람의 이름은 며칠 뒤에 알고, 그냥 그렇게 집을 나와 함께 살았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산을 더듬으며 풀을 캐다 데쳐 먹었다. 그러면서도 종일 그림을 그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이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교과서가 보이지 않았다. 가족은 정신 없이 교보문고로 달려가 교과서를 샀고, 책을 한아름 안고 학교에 간 아들을 보고 학급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아직 학교에서 교과서를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꼭 올려야 한다는 며느리를 메스꺼워하고, 아들 결혼식 날 친구들과 함께 하객의 자리에 앉아 있는다. 그러나 이런 돌출 행동 때문에 그녀가 매력적인 기인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화가 김점선은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그녀의 돌발행동은 객기가 아니다. 그녀는 현대 화가들의 화법을 의도적으로 철저히 무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배움과 미술 이론이 빈약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자의식은 지독한 독서에서 우러나온 오래 숙성된 사고의 퇴적층이 만들어낸 내면의 힘이다. 독서하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옳다고 믿는대로, 자신을 속이지 않고 확고하게 살았을 뿐이다. 그녀에게서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독서에 관한 지론이다. "사람들은 독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덜 떨어진 자들은 그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독서는 숨쉬기 같아서 그 진행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 의식이 없는 것이 건강한 징후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화제로 삼아서 떠들어대는 자들이 종종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병증이 있다는 것이다."(p. 185). 

화가 김점선은 이미 이 땅을 떠났지만, 이제 막 팬이 된 나의 가슴 속에서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저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어느새 그림이 자신을 인도했다는 김점선. 그리고 또 그렸지만, 한 번도 영감이 있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고백에 나는 감동한다. 세상살이에 무심한 듯 주류에서 한발짝 떨어져 산 듯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사는 일에 부지런했고, 최선을 다했고, 성실했다.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암조차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황홀해 했던 김점선, 그 어떤 위인보다 진정으로 그녀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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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09-05-2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그래서 고 김점선씨를 무진장 존경할겁니다! 지저분하게 빗질안한 빗자루커트머리! 언제나 검은티셔츠에 반바지! 화장끼도 없고 털털하다못해 솔직한 그분! 저도 결혼하면 외국인이면서 홀어머니(반드시 미혼모)에 외아들! 학력은 초졸에서 고졸정도! 아니면 홈스쿨링이나 독학을 한 그런사람을 신랑감으로 점찍고 싶습니다!

신의딸 2009-05-21 15:05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조건이 꽤 까다로운데요(!) ^^; 저도 김점선씨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닮고 싶은데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는 저의 나약함을 탓하고 있습니다.. 박혜연씨 대단하시네요~ 관심과 덧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알라딘에서 서재 만들고 나서 첫 덧글 달려서 오늘 기분 아주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