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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위로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위로일지라도 거절합니다.
하나님께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가장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었는데,
나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에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해주실 수 있는데 해주지 않은 것,
그 거절이 저에게는 가장 큰 상처입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사람에게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더 화가 납니다.
복음서에 가득한 기적은 그때뿐인 기적이었나요?
기적은 예수님 공생애 기간으로 막을 내리고
이제 유효한 것은 내게 요구하는 온갖 계명과 율법들뿐인 겁니까?
‘맥’이 찾아간 ‘오두막’에서 삼위 하나님을 맞닥뜨렸을 때, 나도 모르게 원망의 말들이 터져 나왔다. 책을 읽기 바로 직전, 나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또 한 번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맥’을 따라 좇아간 ‘오두막’에서 이렇게 실재적인 하나님을 마주할 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미안하지만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아요.
아니 적어도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오두막’ 안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하나님과 직접 해결하지 않은 채, 묻어둔 나의 상처가 다시 건드려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의 방식대로 알아서 처리하고 겨우 진정하고 있는데,
결과를 바꿔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상처의 한 가운데로 나를 부르십니까.
잔인하십니다.
더구나 내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친근하고 인자한 모습이라니!
나는 월리엄 폴 영의 은밀한 ‘오두막’을 엿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두막]의 저자인 월리엄 폴 영은 부모가 선교사로 활동하던 뉴기니에서 자랐고, 그곳 원주민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고 소개된다. 그런 월리엄 폴 영에게 ‘오두막’은 모든 비밀, 아픔, 치욕적 기억들을 묻어두는 마음속 깊은 곳을 상징한다고. 나는 이 소개 글을 읽자마자 흠칫 놀라 내 마음 안의 오두막이 안전한지 확인했다. 아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니 안심이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놀란다. ‘내 안에도 오두막이 존재하는구나!’ 잊은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집 짓고 살고 있는 은밀한 고통들. 나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누구에게도 꺼내놓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비밀스런 오두막을 안전하게 숨겨둔 채, 단지 월리엄 폴 영의 은밀한 오두막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 안에는 이러한 ‘오두막’이 실재한다. ‘맥’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매켄지’에게 ‘오두막’은 사랑하는 딸이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된 장소이다. 즉, 그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된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맥은 ‘파파’(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파파’라고 부른다)로부터 쪽지를 받는다.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이 장난 같은 쪽지의 진위를 맥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다시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 ‘오두막’을 찾아간다. 마침내 그가 찾은 ‘오두막’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쪽지보다 더 황당한 세 사람과의 만남이다. ‘파파’(성부 하나님)와 ‘예수’(성자 하나님)와 ‘사라유’(성령 하나님),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오두막]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은 그들과의 교제 가운데로 맥을 초대하며, 그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나는 구약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대면하고자 하실 때에는 ‘원점상황’, 즉 아무것도 없는 광야(사막)로 그의 백성을 불러내신다고 배웠다. 하나님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곳, 그리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은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상처를 재료로 스스로 마음 안에 지은 집, 하나님과의 대화를 거절한 채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린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와계셨다. 더 달아날 데도 없고, 숨을 데도 없고, 감출 것도 없는 바로 나의 가장 은밀한 그곳에 말이다.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 사람이든, 부정하는 사람이든 살면서 한 번쯤은 신에 대한 실망을 경험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부조리와 불행은 신, 특히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학자, 설교가, 철학자, 저술가들이 이 문제를 고민해왔고 답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여러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두막]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과 ‘맥’의 대화를 통해 지금 내가 얻은 대답보다 역동적인 답변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신학적 이론을 초월하면서도 논리적이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면서도 명확한 이해를 제공한다.
삼위 하나님을 알 때, 그분의 일하심을 이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나의 경험에 의하면, 치료와 자유함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함으로 비로소 나와 내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맥은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한다! 맥이 경험한 치유와 자유함의 신비,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경험한 치유의 신비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에게 부어지는 자유와 평강의 충만함! 그는 아신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신다. 내가 겪는 고통과 쓰라림을 아신다. 그분이 아신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뜨거운 사랑과 손에 잡힐 듯한 실재적인 소망 가운데 내 안의 상처에 새살이 돋고, 오두막은 막 피어난 꽃향기로 가득한 정원처럼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그것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신비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하나님을 향했던 나의 원망과 분노 위로, 예수님을 욕하며 죽어간 좌편 강도의 모습이 겹쳐진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스스로 제한하시고 고통 가운데 죽으신 예수님.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역사였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예수님께 끊임없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해보라고 외치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위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오두막]을 읽은 사람들이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치유와 용서와 자유를 선물하는 축복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하는 것이다. 나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오두막지기가 되고 싶다. 그 은밀한 [오두막]에서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가 대답임을 모두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영혼은 [오두막]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감지한다. 그리고 고백할 수 있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나를 위해 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