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신화 -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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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이라는 부제를 가진 [그림 같은 신화]는
신화를 주제로 한 명화를 중심으로, 다시 신화의 스토리를 역(逆)으로 엮어냈다.

[그림 같은 신화]는 '사랑', '욕망', '슬픔', '외로움'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신화의 스토리를 재구성하는데, 나에게는 이 네 주제가 모두 '사랑'으로 읽힌다.
욕망도, 슬픔도, 외로움도 결국 사랑이 잉태한 결과물이다.
사랑이 욕망을 낳고, 사랑이 슬픔을 낳고, 사랑이 외로움도 낳았다.

아, 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사랑은 아직도 이렇게 신화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
신화가 탄생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 우리가 하는 사랑과 신화의 사랑이 이렇게 같을 수가 있을까.
그것이 신화가 가진 위력일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떤 사랑의 유형에 대입해도 해석이 가능한 것 말이다.

[그림 같은 신화]가 보여주는 사랑을 읽으면, 우리의 사랑은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
신화는 사랑의 속성과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그 신화 속의 사랑을 복원하는 것 같다.
첫 장에 등장하는 신화부터가 그렇다.
"테세우스를 사랑한 아리아드네."
그녀는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테세우스는 도와준 뒤, 함께 배를 타고 떠난다.
그런데 두 사람을 태운 배가 낙소스 섬에 잠시 머물게 되었 때,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에 그녀를 섬에 홀로 남겨둔 채, 배를 출항시켜버린다.

비겁하게 그녀가 잠든 사이에 아무 이유도, 설명도 없이 말이다.
작가는 "사랑은 예기치 않은 순간 기척도 없이 떠나간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무란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정말 사랑했다면, 최소한의 책임을 졌어야 한다고.

내가 한참 사랑을 꿈꿀 나이에 사랑을 믿지 않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 친구들의 사랑이 상대방의 일방적인 변심으로 끝나버렸을 때,
나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너무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그들의 사랑에 분노했었다.
최소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은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신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알아버렸다.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우리의 사랑은 원래가 그렇게 충동적이고,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다.
어제까지는 열렬하게 사랑했지만,
오늘 내 마음이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정말 그것으로 사랑은 끝인 것이다!

에로스의 사랑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테마 3), 외롭게 하는(테마 4) 이유는
사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테마 2)의 이중성 때문이다.
사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주 왜곡되고 변형된다.
채워지지 않는 소유욕의 욕망은 
사랑하는 이를 영원한 잠에 빠뜨려버리는 극도의 이기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엔디미온),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질투의 불길로 타오르기도 하고(프로크리스),
거품처럼 허망하게 끝나버리기도 한다(아프로디테).

그래서 디프네는 아폴론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가 소유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의 변신을 소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소유하게 되는 그 순간, 그 사랑은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월계수가 되었고, 아폴론은 시인과 승리자들에게 월계관을 주는 것으로
디프네를 영원히 기억한다.

"조지프 캠벨이 말한 대로,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고 
'인간의 거대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원형적인 꿈'이에요."(p. 145)


[그림 같은 신화]를 한마디로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성경의 한 구절을 빌려
"죽음 같이 강한 사랑과, 음부 같이 잔혹한 투기와, 불 같이 일어나는 질투"를 담은
사랑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시지푸스의 신화이야기를 들은 뒤로, '신화'에 관한 정말 여러 권의 책을 탐독했는데,
명화를 재해석한 [그림 같은 신화] 이야기가 가장 재밌었고,
그 여운도 가장 강렬하게 마음에 남았음을 널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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