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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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농담을 허용하면서도 학문에서는 농담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것, 게다가 실없게 들려도 사실은 진지한 성찰로 이끄는 농담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말이지 부당합니다"(14).

학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진지함'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학문에 정진하며 실없는 농담은 질색하는 타입이라면, 에라스무스의 우려대로 <우신예찬>은 "글이 가볍고 장난스럽다며 못마땅해 할 사람들"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농담'이 거슬린다면, 그것은 우신의 자화자찬이 장난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농담이 "뼈를 때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에라스무스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자들을 꾸짖기 위해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어리석음의 신'을 불러냅니다. 종교 권력이 정점이던 시절, (철학자, 법률가, 학자, 변증가, 성직자, 군주 등)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얼굴로 '현자' 행세를 하는 자들의 잘난 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우신'을 통해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 자신을 알리는 나팔수가 되어 큰 소리로 '자화자찬하는' 것은 우신인 내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일이겠습니까? 누가 나보다 더 나 자신에 대해 잘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자는 없습니다"(23).

먼저, '우신'은 자신이 왜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하며, 자기소개부터 합니다. 우신은 부와 재물의 신(아버지)이 가장 매력적이고 쾌활한 요정인 '생기발랄'을 통해 낳은 딸로서, 씨를 뿌리지 않고 밭을 갈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나는 행복의 섬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우신에게는 두 양육자가 있는데, 아름답고 매력적인 두 요정, '만취'와 '무지'가 우신을 키웠답니다. 이밖에도 우신은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다니는데,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팔라우티아(자아도취), 콜라키아(아부), 레테(망각), 미소포니아(태만), 헤도네(쾌락), 아노이아(경솔), 트리페(방탕), 시종들 사이에 남신이 두 명, 코모스(광란), 네그레토스 휘프노스(깊은 잠) 등. 이들은 우신의 충직한 가솔들이며, 우신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온 세상을 지배하며, 위대한 통치자들도 우신에게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이 시종들의 이름은 가톨릭에서 말하는 '죽을 죄'의 죄목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우신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기를 아주 좋아하는 신'으로서, '자화자찬'이야말로 우신의 가장 큰 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신이 자기를 찬양하는 내용이 바로 <우신예찬>입니다. 이것은 칭송받기를 즐기고, 내면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자화자찬을 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라 여기는 '가짜 현자들'의 속살을 폭로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어찌 보면, 우신의 자화자찬은 광기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면, 우신은 자신이야말로 생명 탄생의 주역이라고 주장하는데 얼마나 그럴 듯하게 우기는지, 박수가 터져나올 뻔했습니다. 우신은 주장하기를, 생명은 무릇 결혼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결혼은 우신의 시녀인 '경솔'을 통해 성사되며, 우신의 시녀인 '망각'이 곁에서 도와주기 때문에 여자들이 출산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 콧대 높은 철학자들, 그들의 자리를 계승한 수도사들, 자주색 옷을 걸친 군주들, 경건한 사제들과 그들보다 세 배는 더 거룩한 교황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우신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없다면 인간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우신의 '자화자찬'이 참으로 대담하여 광기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진실 자체는 버겁고 힘들지 몰라도 거기에 재미를 더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좀 더 쉽게 파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252).

에라스무스는 우신의 자화자찬에 서려 있는 광기를 통해, 삶의 도처에 산재한 어리석은 견해들, 그 속에서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 특히 기독교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의 열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광기에 가까운지를 비춰볼 수 있게 해줍니다. 사회마다 우둔하고 어리석다며 쉽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둑질하는 자, 술주정뱅이, 도박꾼, 간음하는 자 같은 부류겠지요. 이에 반해, 소위 성실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부류들은 이들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들을 손가락질할 마땅한 자격이라도 갖추고 있는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신예찬>은 우리 안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우월감, 위선, 거짓, 허풍, 방종, 아부, 사치, 뻔뻔함 등을 마주하게 해줍니다. 어쩌면, 이러한 지적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이 도덕주의자들, 성직자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신예찬>을 읽으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죄로 찌든 세상을 청소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거룩한 땅이라는 성전을 청소하셨고, 세리와 창녀 같은 부류가 아니라 종교지도자들과 대립하셨으며, 결국 불경하고 악한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경건한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법에 의해 불법적으로 처형당하신 아이러니가 생각났습니다. 스스로를 지혜롭고 선하고 경건하게 여기며 백성을 지도하는 이들에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어리석음을 숨겨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것을 모른다고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이 남들 눈에는 다 보이는데, 자기만 모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우신예찬>은 바로 그와 같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책같습니다. 조롱을 위한 조롱이 아니라, 받아들이기 버겁고 힘든 진실이지만 조금이라도 유쾌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깊은 지혜같습니다. <우신예찬>, 해학과 풍자가 가득하나 절대로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농담'입니다. 지혜는 지혜를 더 날카롭게 한다지요. 그러니 (진짜) 지혜있는 자들이 읽는다면, 지혜가 더할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인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지혜) 안에서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신앙인들의 열정이 얼마나 세상을 어지럽게 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종교적인 열심을 내면 낼수록 그것은 어리석은 광기에 가까워지고, 그런 광기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희생도 하나님의 일에는 더 방해가 된다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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