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미켈란젤로가 지은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1505년에 착공하여, 공식적으로 완공할 때까지 무려 15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러니까 미켈란젤로가 수주를 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고, 또 그의 사망 이후에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었다. 미켈란젤로가 이 거대한 공사에 투자할 수 있었던 시간은 겨우 17년뿐이다. 그럼에도 이 대성당은 미켈란젤로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설계안도 수정이 가해졌고, 그 건물의 오랜 역사에서 미켈란젤로가 차지하는 시간적 비주은 겨우 12퍼센트 남짓에 불과하다. 어떻게 나머지 88퍼센트를 직접 통제하지 않았는데도 성 베대로 대성당을 지은 공로가 미켈란젤로에게 돌아갔을까? 브라만테, 라파엘로, 줄리아노 다 상갈로, 안토니오 다 상갈로 등은 모두 설계자(건축자)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공사를 시작한 브라만테도, 공사를 마무리한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카를로 마데르노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자라는 영예를 얻지 못했다. 단순히 이들보다 미켈란젤로의 명성이 더 높았기 때문일까?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어떻게 성 베드로 대성당이 미켈란젤로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널리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일흔하나였다. 건축은 엄청난 양의 노동과 시간이 드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이 고령의 예술가는 자신이 완공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성 베대로 대성당 건축이라는 대대적 규모와 복잡한 구조의 공사를 이어받는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에 전심전력 했던, 그의 생애 마지막 20년을 집중 조명한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이 일깨워주는 사실 하나는, 병약하고 고령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이라는 엄청난 공사의 책임을 맡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거나 혼란스러운 모험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미켈란젤로가 달성한 가장 큰 건축적 업적은 피란체의 산 로렌초 교회의 파사드였고, 그마저도 20년 전에 중도 취소되어서 "예술가는 두고두고 그 일을 슬퍼하고 부끄러워 했다"(124)고 전한다. "교황은 미켈란젤로가 건설한 건물은 단 하나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완공된 건물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미켈란젤로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최고 수석 건축가로 임명하려는 교황은 어떤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124)

그럼에도, 이책은, 미켈란젤로가 죽음의 그림자가 불길한 기세로 어른거리는 시기에, 성 베드로 대성당 최고 수석 건축가라는 부담스러운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다섯 교황이 오고 가는 세월 동안, 무엇보다 대성당 공사에 전심전력으로 매달렸음을 증언한다. 새삼스러운 사실은, 이 역사적인 대(大) 예술가도, 삶의 현실에서는 건축의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초를 겪어내야 했다는 점이다. 공사는 이미 애초에 진행한 설계안으로부터 벗어나 있었고,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축가가 여섯 명이나 교체되었으며, 저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건축 구상을 '강요'하려 드는 바람에 대성당 건축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관리 감독관들은 미켈란젤로의 임명을 엄청난 실수로 생각하여 그에게 의구심을 품었고, 현장에는 비효율성과 부정부패, 뇌물과 횡령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예술가였지만, 대성당이라는 대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뺀질뺀질하고, 거만한 자들을 직접 상대해야 했다. 이밖에도 곤란한 문제는 많았다. 미켈란젤로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브란만테의 건축 구상을 살리되, 여러 가지 공학적 결점을 보완하는 것이었다(134). 그러나 예술가가 직면해야 했던 이 산적한 문제들이야말로 왜 미켈란젤로가 대가인지, 왜 이 성당을 건축한 공이 미켈란젤로에게 돌아가야 했는지를 증명해주니, 삶은 참 역설적이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이 들려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미켈란젤로, "그는 이 세상에서 그저 초연히 물러서지 않았다"(15)는 한마디가 아닐까 한다.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순순히 아늑한 밤을 맞이 하지 말라"고 노래했던 딜런 토마스의 시가 울려퍼지는 느낌이었다. "노인이여, 저무는 날에 소리치고 저항하세요.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순순히 아늑한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미켈란젤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당은 최후의 임무였고, 이 공사는 미켈란젤로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계속 그를 괴롭혔지만, 그것은 이 거장이 절망과 죽음에 굴복하지 말아야 할 최선의 이유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이미 성공한 예술가였던 미켈란제로는, 그의 생애 마지막을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 베대로 대성당이라는 까다롭고 복잡하고 힘겨운 일에 기꺼이 매달렸다. 무엇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였고, 그는 하나님의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작업이었음을 미켈란젤로가 일깨워준다. 그에게 생명을 주신 분, 재능을 주신 분, 그리고 기회와 시간을 주신 분에게 생의 마지막 호흡이 다하도록 깊이 헌신하기를 원했던 예술가의 열정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담겨 있음을 모두가 기억해야 할 터이다.

비록 노인의 몸이나마 내가 그분에게 봉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해주시기를.

이제 내게는 이 노구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의 두뇌와 기억은 이미 다른 곳에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