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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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광야와 같은 시기에,

우리는 다시 애굽(착취 시스템 속의 제국)으로 돌아가기를 꿈꿀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을 만큼 배움이 컸던 책입니다. 책은 얇지만, 메시지의 무게감은 실로 상당합니다. 왜 '월터 브루그만'을 구약 성경 해석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특히 구약성경으로 현대의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탁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보화를 캐낸다는 것이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구나 싶습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은 광야와 같은 환경 가운데 던져진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제 인류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전망합니다. 많은 사람이 슬퍼하고 걱정하고 한탄하는 것은 무너진 경제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은 이전의 경제 시스템으로의 회귀는 오히려 저주라는 것을 벼락처럼 깨닫게 해줍니다. "해방된 노예들이 볼 때 광야에서의 선택사항은 죽음 아니면 바로에게 다시 복종하는 것이었다. 바이러스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참여해야만 생계에 필요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의 재활성화라는 말은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태도로 볼 수 있다"(15).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국의 착취 시스템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아니라, 고된 작업이 되겠지만 공공선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굽의 착취 시스템을 '떠나'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 거룩한 산에 이르는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은 바로 지금이 그 기회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유대인들은 애굽의 착취에서 거룩한 산에 이르는 이 여행을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해 왔다"(34).

공공선을 위해서는 '부족함의 악몽'을 낳는 '불안의 시스템'을 떠나야만 했다(49).

월터 브루그만은 노예로 살지라도 안정된 빵을 보장하는 제국(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우리를 돌려 세워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세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데, 첫째는 '부족함의 왕국'을 떠나 이웃을 사랑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주는 출애굽 내러티브를, 둘째는, 세상의 고통에 심히 괴로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웃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예레미야의 계시를, 셋째는, 현재 실패한 도시 경제의 '상실'로부터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는 가운데 부족함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그때야 비로소 이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출애굽 내러티브, 예레미야의 계시, 이사야서의 메시지 모두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는데, 무엇보다 도전적이고 새롭게 읽혔던 부분은, 출애굽 내러티브였습니다. 이미 온 세상을 먹여살릴 만한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제국의 바로가 '부족함의 악몽'을 꾼 후, 그 불안이 어떠한 착취적 정책을 낳는지를 보여주며, 광야로 부르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리고 바벨론에서 발견한 사실은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긴 역사는 '바로의 부족함의 시스템'과 '하나님의 풍성함의 제시' 사이의 충돌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의 긴 역사도 통제를 낳는 '부족함'과 후함을 낳는 '풍성함' 사이의 충돌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62-63).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결국', 이웃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메시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절박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계명을 받고도, 우리는 여전히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채, 제국의 시스템 안에서 부족함의 악몽을 꾸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법이 우리 사이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백성들을 제국 밖으로 불러내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 제국 안으로 편입해 들어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만을 위한 신앙'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신앙'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낡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복음의 본질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사회 체제 속에서 신음하는 이웃들 속으로 뛰어들라고 초대합니다. 옛 체제를 떠나 예수님이 여신 새 체제 속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합니다. 착취적인 사회 체제를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계명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바로 이런 믿음의 공동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은 바로 지금이 행동해야 할 때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시내산을 떠났다. 그들은 누구도 부족함 없이 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었다. 세상에 만연한 부족함의 악몽을 거부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에도 온갖 폭력과 착취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말씀이 선포되었다. 빵이 주어졌다. 계명이 주어졌다. 안식일이 지켜졌다. 이스라엘과 동맹국들은 바로에게서 벗어나 이웃 사랑을 향해 가는 길에 머물렀다"(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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