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베이
조조 모예스 지음, 김현수 옮김 / 살림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그러다가 언제나 그렇듯, 호기심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탐욕이 해내게 된다"(40).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고들 말하는데, 그것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호주의 작은 해변 '실버베이'와 그곳에 있는 '실버베이 호텔'이 그 충돌 지점입니다.

낡고 초라한 호텔이지만 실버베이를 사랑하는 이들은, "고요한 바다 위에 오직 나와 돌고래들, 그때가 최고의 순간이란걸"(67) 알고 있으며, 여기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고래 관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그들에게 적절한 균형은 아주 미묘한 문제입니다. 고래 구경을 오는 관광객이 너무 적으면 그들의 사업이 위태로워지고, 너무 많으면 그곳 바다 생물들을 위협하게 될 터였습니다. 고래 관광 사업이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생계를 꾸려가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그게 실버베이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해안의 위아래 동네 이웃들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성공에 따른 예상치 못했던 결과물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야 했다. 교통 체증, 술 취한 휴가객들, 끝없이 이어지는 업데이트와 리노베이션의 압박. 바로 평화의 상실이었다"(40).

그런데 실버베이 호텔에 그들의 평화를 위협할 만한 한 인물이 찾아들며, 불길한 충돌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투자가들이 떠나가기 전에, 최상의 서비스와 초호화 시설을 갖춘 복합 레저 단지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 '마이크'는 실버베이 호텔에 머물며 지역 탐색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마이크'가 자신이 실버베이를 찾은 진짜 목적을 숨긴 채, 실버베이 호텔을 지키고 있는 일흔여섯의 할머니 '캐슬린'과 그녀의 조카 '라이자', 그리고 '라이자'의 딸 '해나'의 일상 속으로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버렸다는 것이지요.

"내가 사랑에 빠졌구나."

그 말이 그냥 그렇게 무심코 튀어나왔다.

나는 멍해져서 소파에 기대앉아 다시 한번 말했다.

"맙소사. 사랑에 빠진 거였어"(292).

<실버베이>는 환경과 개발의 가치가 충돌하고, 자신의 현재를 감추고 있는 남자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있는 여자가 충돌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로 실버베이에 왔는지 말하지 못했던 '마이크'와 그리워 하는 것, 슬프게 하는 것, 그리고 자기 가족 얘기조차 과거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는 '라이자'. 그들의 닫아 건 입을 열게 만든 건, 바로 돌고래였습니다. 돌고래와 사랑에 빠지게 된 마이크는 고수익보다 바다 생물에게 어떠한 위협도 주지 않는 개발을 원하게 되었고, 자신의 과거로부터 그토록 도망치기 원했던 '라이자'는 "돌고래의 방문을 받는 삶의 축복'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과거의 공포와 마주해보기로 합니다. 마이크와 라이자가 서로의 그물에 걸려들기 전에, 그들의 삶의 그물에 먼저 걸려든 것은 '(돌)고래'였고, 자연을 사랑하는 그 원초적인 감정이 마이크와 라이자 안에 숨어 있던 수치심과 죄책감과 탐욕을 치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그 얘기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지 당신이 말해줘요"(352).

<실버베이>는 고래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남자는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쌓아올린 성을 허물어뜨리고, 여자는 자신이 온 힘을 다해 피해왔던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갖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이고, 사랑의 다른 말은 희생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지요. <실버베이>는 영화 <콘스탄틴>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에 처했던 '콘스탄틴'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비밀이 바로 '희생'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말입니다. 이기적인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망과, 가져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을 이겨내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어쩌면 인간은 그런 힘을 지켜내기 위해 <실버베이>와 같은 이야기 안에 그것을 감춰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희생이 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는 것입니다.

<실버베이>를 읽으며, 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는 힘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조조 모예스는 감동적인 로맨스로 유명한 작가라고 합니다. 그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조조 모예스와의 만남은 <실버베이>가 처음입니다. <실버베이>는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조조 모예스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더 특별한 것, 더 특별한 것을 원하다가, 정말 중요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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