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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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남자 어른이 좋은 사람인가가 그렇게 중요해?"(89)

여기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누군가 "선과 악은 너와 나 사이가 아니라, 내 안을 관통한다"는 것과 비슷한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 무리 가운데 선을 그어 좋은 사람은 이쪽에, 나쁜 사람은 저쪽에 서도록 나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은, 누구나 그 사람 안에 좋은 사람의 요소와 나쁜 사람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의 기준은 내 안을 관통합니다. 운이 좋으면 좋은 사람이 발현될 것이지만, 운이 나쁘면 나쁜 사람의 성정이 나를 집에 삼킬 것입니다. 이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람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로 가르기 시작할 때, '슬림 할아버지'에 대해 "사람들은 교활하다고 떠들어대기만 하지, 할아버지의 인내심이나 의지력이나 결단력 같은 건" 얘기를 안 하는 것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됩니다(287). 그러니까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혀 사는 사람도 어쩌면 우리가 그의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이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 어쩌면 그것 자체가 제일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여기'와 '거기'에서의 의미.  '여기'는, 그때 할아버지가 있었던 보고 로드 교도소 제2구역 D9번 방이다. 그리고 '거기'는 할아버지의 머리와 가슴 안에서 팽창하며 무한하게 열리는 우주다(12).

많은 사람이 주체적인 삶을 꿈꾸고, 완벽하게 통제되는 환경을 바라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갈망하지만, 우리 인생을 결정짓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발악처럼 요즘은 성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선택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이 따르는지 눈감고 있을 뿐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엘리는 절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환경에 내던져져 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을 수도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망가진 가족, 범죄로 얼룩진 잔혹한 일상, 혼란과 절망으로 뒤범벅된 '여기'에서 엘리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다들 내 인생의 남자 어른들을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로 평가하려고 한다. 나는 세세한 일들로 그들을 평가한다. 추억들로.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른 횟수로(88).

상담학에서는 아무리 큰 혼란과 절망과 우울에 처한 사람도 '의미 타자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은 살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엘리를 지켜보며, 누가 이 소년에게 '의미 있는 타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우주를 삼킨 소년>이 주는 가장 가슴 찡한 교훈 중 하나는, 심지어 '망가져' 버린 사람에게서도 의미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던 엘리가 바로 모두에게 의미 있는 타자가 되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의미 있는 타자는 누구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갈망했던 저와 같은 독자는, 스스로 타인에게 의미 있는 타자가 되어줌으로써 자신 또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주를 삼킨 소년>은 세세한 순간들, 사소해보이는 대화들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포착해내는 즐거움이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한 인생을, 이렇게 작고 사소한 순간들까지 세세하게 주목해볼 수 있다면, 죄 없는 사람들을 쉽게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을지 모르며,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우리도 누군가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주를 삼킨 소년>과 같은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잔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한 어린 '트렌트 돌턴'에게 뜨거운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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