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기 드 모파상 지음, 이형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진실한 사랑은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

혹은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입씨름이,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을 듯 계속되었다(137).

책상 밑에 숨겨 뒤고 읽었던 그 옛날의 로맨스 시리즈처럼,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세트를 읽을 때는 부모님(?) 몰래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세트는 "작가의 표현력이나 작품성, 예술성은 철저히 외면받은 채, 사회의 풍속과 통념을 해친다는 이유만으로 붙태워지거나 사회적 스탠들에 휘말린 작품들"(출판사 서평 중에서)을 골라 담은 위험한 시리즈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불태워지거나 외설 재판에 휘말릴 만큼 금기시 되었던 이 작품들은, 바로 그 금기시 되었다는 이유로 사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합니다. "음란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을수록", "엄청난 해적판을 양산하여 널리 회자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위험한 스캔들에 휘말린 여섯 작품 중, 첫 책으로 골라든 책은 바로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입니다. 우리에게는 <목걸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졌으며,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그 명성이 자자한 모빠상이 들려주는 광기와 정염으로 얼룩진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지겹도록 넘쳐나는 것이 사랑 이야기라지만, <단편집>으로 엮어서 들려줄 만큼 '불같이 타오르는 광기 어린 욕정'에 대해 들려줄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많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섯 작품을 담은 이 세트 중에서 그나마 그가 가장 덜 선정적이고, 덜 파격적이며, 가장 건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벼락 맞은 가슴처럼 사랑이라는 격렬한 감정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검게 타버려 초토화된 심장을 가졌을 때? 기력과 영혼을 다 바쳐 한 사람에게 충실했을 때? 그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때? 누군가 모빠상에게 진실한 사랑은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면,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에서 찾은 모빠상의 대답은 "진실한 사랑은 다 한 번밖에 할 수 없다"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광기 어린 욕정은 그 사람을 다 태우지 않고는 꺼지는 법이 없으며, 그렇게 타버린 사람이 다시 소생하는 것을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자주 빠지는 사람들 중에는

술꾼과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마셔본 자가 마시듯,

사랑해본 사람이 사랑하는 법입니다(138).

사랑을 글로 배우던 시절, 한때 사랑만이 유일한 삶의 동기라고 느껴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습관처럼, 본능처럼, 경험해보지도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목말라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지고 싶은 욕망은 늘 그 감정에 예민해지게 만들었고, 쉽게 전율했으나,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욕구로 현실은 삭박했고, 공허했습니다. 그러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지요. 광증을 유발할 정도의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은, 운이 없었다기 보다 어쩌면 내가 사랑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것 봐, 언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남자가 아니고 사랑 그 자체야.

그리고 그날 밤에도, 언니의 진정한 연인은 달빛이었어!(20)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그 욕정은 우리를 얼마나 어리석게 만드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랑이면 행복하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감정이라고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지옥불과 같은 격렬한 감정에 삼켜진 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머리카락이라던지, 죽어버린 연인의 시체라든지, 그 집착이 극단적이고 광적일수록 그 사랑은 영웅적으로 변하며, 나중에는 그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그 자체에 매달리며 스스로 뛰어든 지옥불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에서는 심장에 흥건히 넘치는 초월적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는 사랑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업습니다. 오히려 닿아서는 안 되는 어떤 물건에 접촉한 듯한 혐오감이 느껴지는데, 그 때문에 더욱 그런 감정에 한 번도 휘말려 보지 못한 채 나이 들어버린 삶이 더없이 진부하고 삭막하고 초라하고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딱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진실할수록 우리는 '숭고'와 '광기' 사이를 위험하게 오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숭고'와 '광기'는 모두 나의 희생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때로는 그 광기가 나는 물론 상대방까지 삼켜버린다 해도). 나의 행복을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이기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인지,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인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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