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 세계기독교고전 5
우골리노 지음, 박명곤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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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제3 수도회에 소속된 거룩한 베드로 페티나미오 형제가 시에나의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성도들을 데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발을 들어 그의 발자국을 땅바닥에 남겨 놓았다. 모든 성인들이 자기 발을 주님의 발자국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에 성 프란체스코가 와서 그의 발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에 놓았을 때 정확하게 들어맞았다"(44).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누가복음 8장 2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교인은 많은데 '제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성도와 제자의 개념을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예수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한 제자 운동이 실패했다고 평가했고, 그러자 어떤 이는 예수 제자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너무도 고결하고 숭고하여 아직 시도되지 못했을 뿐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와중에 누구보다 가장 충성스럽게, 가장 완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랐던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시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잘 본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성 프란체스코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의 기도로 알려진 기도문과,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 상처와 똑같은 5가지 상처를 그의 몸에 지니고 있어 고통 받았다는 것, 극도로 청빈한 삶을 살며 가난한 이웃을 제 몸처럼 돌보고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의 정신을 본받은 수도회가 설립되었다는 민중의 전승이나, 단편적인 지식이 전부였습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은 성 프란체스코가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죽고 1세기 후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한 수도사에 의해 기록"(17)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작은 꽃들"로 번역된 '피오레티'(영어로는 앤솔로지)는 "명문집"을 뜻하는 말이라고 말합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은 성 프란체스코를 가까이에 있었던 가장 친한 제자들에 의해 전달된 전통으로, 성 프란체스코의 행적과 기이한 영적 능력과 체험, 거룩한 오상(십자가의 다섯 가지 상처)이 새겨지게 된 경위, 그의 제자들의 행적과 가르침 등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충격과 도전은 우리가 얼마나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삶을 허비하고 있는가, 영적으로 얼마나 아둔해져 있는가, 그러느라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과의 연합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교만한가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이 성자는 삶의 모든 목표, 모든 즐거움을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것,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되는 연합에 두었으며, 하나님의 은혜 앞에 얼마나 겸손한지 자신이 얼마나 타락한 죄인인지를 늘 잊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모욕과 멸시, 고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기뻐하여 감히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 자기는 그보다 더 나은 은혜를 입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하나님께 불손한 말을 쏟아놓으며, 정말 작은 경건에도 자신을 과시하고 우쭐대기를 좋아하는 오늘의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깊은 명상과 고요한 생활, 하나님과의 친밀하고도 사랑이 넘치는 영적 교통을 기뻐한 성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은 "옷도 없고, 칼도 접시도 없으며, 그릇도, 집도, 식탁과 요리사도 없이" 구걸하여 얻은 빵 몇 조각이 전부일지라도, "이것들은 인간의 수고로 준비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마련"된 것으로 여기며, '거룩한 가난(청빈)이라는 매우 고귀한 보물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은, "십자가를 따르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63).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십자가를 따르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귀족 출신의 한 영리한 젊은이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들어왔다. 그는 며칠 동안 관습을 따른 후에, 마귀의 사주에 의해 그가 입고 있는 의복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가 조잡한 부대 자루를 입고 있다고 느꼈다. 소매는 그의 신경에 거슬리고, 두건도 싫었으며, 그 의복의 길고 거친 것이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짐이었다. 그리하여 갈수록 수도회를 싫어하게 되어 결국 모든 의복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98).

성 프란체스코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권면했던 것은 거룩한 교회를 존중하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세상의 역경과 흥망에 인내를 가지며, 천사와 같은 순결을 지니고,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신의 양심 앞에서 평안과 조화 가운데 거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과 온유로 대하고, 거룩한 청빈을 사랑하며, 거룩한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함에 전심을 다하고, 영혼과 육체의 모든 소망을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먹이시는 선한 목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것이었습니다(93). 오늘날 진정으로 이러한 목적으로, 이러한 목표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을 몇 명이나 찾아볼 수 있을까요?

마귀의 사주로 수도회의 의복을 싫어하게 된 젊은이는 그 의복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제단 앞을 지나가다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무수한 성자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화려한 옷을 입고 행진하는 환상이었습니다. 성자들이 입고 있던 찬한하고 아름다운 의복들은 지상에거 인내로써 거친 의복을 입었던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입혀주신 옷이었습니다. 이 환상을 본 젊은이는 더욱 더 영원한 축복을 위하여 지상에서의 회개와 남루한 의복의 모든 고통을 사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18절)고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글로벌 펜데믹으로 전세계의 일상이 멈춰진 시기에, 고요한 생활 가운데 묵상하며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누군가는 이들의 믿음과 생활을 '극단적'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무엇을 잊고 있는지, 얼마나 영적으로 깊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지를 아프게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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