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찬양하는 것과 그분께 실제로 순종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긴장이 현대 기독교가 도덕적 권위와 영적 신뢰성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이유다(15-16).
세상이 멸망하는 이유는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인 열 명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세상의 진짜 문제는 죄인들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데에 있음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거나, 오해하고 있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 그것이 진짜 문제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살 때, 이 세상은 소망을 잃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소망을 잃어가는 이 세대를 일꺠우는 선지자적인 외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설교로 손꼽히는 '산상수훈'을 다시 풀이해 주는데, 단순한 강해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어떻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꼬집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이름이 <예수님의 진심>입니다. 마치 비대면 사회에서 SNS 만으로 소통할 때, 표정이나 감정, 상황 등은 전달되지 않고 오직 '문자'로만 전달된 메시지를 종종 제 입장에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제 입장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진심>에 다시 귀 기울여보자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초대합니다.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잘못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 <예수님의 진심>에 다시 귀 기울이는 것은 실로 진지하고, 엄중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수님의 진심>에 두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카이 제서니 목사님은 "팔복을 조건으로 바꾸지 말라"는 단호한 외침으로 이 책을 시작하는데, "종교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위험해진다. 그들은 특별한 경우를 보편적인 경우로 해석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20)는 첫 문장에서부터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기 딱 좋은 설교자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사람을 낚는 어부' 곧 제자가 되라고 부르신다. 종교에 빠진 자들은 이것을 베드로만의 특별한 소명으로 보지 않고 모든 크리스천들에 대한 보편적인 기대 사항으로 본다"(20).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고 보편적인 적용을 해왔었던가요! 그렇게 적용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반론도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 즉 그 1차적인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라는 관점에서 귀 담아들어야 할 지적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산상수훈'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을 <예수님의 진심>을 들려줍니다. "팔복을 조건으로 바꾸지 말라", "예수님은 복을 받는 방법을 규정하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을 받은 사람들을 기술하신 것이다. 세상은 강하고 웃는 사람들이 잘 산다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하고 슬프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잘 산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기대를 뒤엎으셨다(22). … 다시 말하지만 산상수훈의 도입부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좋은 소식들의 목록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나라가 옴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 관해 기술하셨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신 것이 아니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