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 - 차이를 품되 구별되어 세상을 섬기다
팀 켈러.존 이나주 외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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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66).

위기청소년사역에 뜻을 모은 우리 공동체는, 청소년전문상담센터에서 실시하는 특별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학교에서 소위 문제 학생으로 낙인 찍한 아이들을 위한 특별교육이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 2시간 안에 '제대로 돌봄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도울 수 있는가'였습니다. 복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도, 아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고전적이지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세족식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종의 자세를 취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발을 씻기기에 앞서 발뒷꿈치를 두 손으로 꽉 잡은 채, 이마를 완전히 땅에 닿게 하고 엎드렸습니다. 흡연, 학교 폭력 등의 이유로 특별 교육을 받으러 온 아이들은, 몹시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자기들이 발을 씻기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섬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삼키는 아이들은 세족식이 끝난 후, 섬김이들을 향해 큰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 학생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어른들의 변화였습니다. 침을 뱉고, 꽁초를 버리고, 욕설을 내뱉는 아이들을 향해 혀를 차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어른들이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고요.

이 책의 중심 질문은 이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면서도 복음적 확신을 유지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13)

이 책의 던지는 질문은, 간결한 해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겸손, 인내, 관용', '겸손, 소망, 사랑, 용기', '존중, 겸손, 신뢰성, 사랑'과 같은 답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이 던지는 질문은, 해답보다 그 목표한 지점에 이르는 '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처방을 나열하기보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19). 신학자, 목회자, 모험가, 기업가, 작가, 송라이터, 스토리텔레, 번역자, 다리 놓는 사람, 의료인, 화해자, 평화를 이루는 자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도 복음적 확신을 유지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들려줍니다.

이 책은, 구원(진리)은 배타적이지만 공동체를 형성함은 포용적이어야 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에 대한 회개를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 '자기 신념'을 '좋은 믿음'으로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물으며, 그 출발선(부르심)에 우리를 다시 데려다 세워 놓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에 참여하되,

숨 막히는 불안이 아니라

확신에 찬 소망을 가지고 참여하라는 부름이다(22).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은 저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다가옵니다. 소금이 제 맛을 내려면 기꺼이 자기를 녹여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나아가, "소금을 거름으로 보는 시각"(112)을 더하고 요청합니다. "소금을 거름으로 보는 이런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것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곳으로 가서 새생명이 자라도록 도우라는 부름을 받았다는 적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113).

그런데 이 부르심이 가슴을 뛰게 하지는 못합니다. 다원주의의 현실 속에서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이미 조금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일은, 내가 기꺼이 내민 손을 미워하고, 거부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 위에서 주님과 함께 죽어야 가능한 일임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제게 이 책은 움츠러들지 말고, 확신에 찬 소망으로, 세상에 참여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담을 허물고 차이를 뛰어넘는 예수님을 따라 경계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위험해보입니다. 그것을 실행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주님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파격적이었나를 깨달으며 놀라고 또 놀라고 맙니다. 교회는 거룩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완전히 뒤집어 엎고, 죄는 나와 너 사이가 아니라 내 속을 관통하고 있다는 겸손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용기가 필요해보입니다. 그리고 참 용기는 참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웠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눅 19:7, 새번역).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을 때

사람들은 불평하며 위협적으로 굴었지만

예수님은 그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

사도 요한은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요 4:9),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우물가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시고 죽으셨다(눅 23:43).

우리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에 힘입어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기를 힘쓴다.

-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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