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서야 제가 얼마나 준비 없이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는지를 알았습니다. 저는 참 문제가 많은 남편과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몰랐고 인정하기 싫었습니다"(7).
'위기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소위 '문제아'들을 만날 때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믿는 분'들이라 교회가 싫고, 예수님이 싫고, 부모가 더 싫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볼 때마다, '아, 그 가정은 내가 아버지이고 남편인 것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과 상관이 없구나. 내가 어머니이고 아내인 것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과 별개인가 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십자가 복음 외에는 이 병든 가정, 상처난 관계를 치유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십자가에서 살아난 가정>은 왜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의 소망이며, 가정을 회복시키고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과의 24시간 동행하는 영성일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유기성 목사님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이 가정이고 부부사이"(9)라고 단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490번이나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완전수의 곱이므로 "언제든지, 얼마든지 용서하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숫자적으로만 계산해서 490번이라 할지라도 "490번씩이나 계속 용서할 인간관계"는 바로 "부부 관계"라는 것입니다(113-114). 이 말씀을 가만 곱씹어 보면, 나의 민낯, 신앙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정이야말로 '십자가' 없이는 제대로 세워질 수 없겠구나 하는 사실이 날카롭게 깨달아집니다.
그런데 십자가 복음이 가정을 살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십자가와 만나면 고백하게 되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우리 가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위에서 "나는 죽었습니다" 하는 고백이 왜 우리 가정을 살릴까요?
내 주관, 내 소원, 내 고집이,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하고, 누구보다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주의 교훈과 훈계"가 아니라, 자신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열심을 내기 때문에 오히여 자녀를 망치기 쉽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고통스럽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남편을 변화시키고 하기 때문에 남편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오히려 너무 노력해서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입니다. "왜 주님이 우리 가정에는 역사하시지 않는지 궁금하십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죽음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20-21).
그러니 우리 가정이 십자가에서 살아나려면 우리의 기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 변화시켜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주님, 저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저를 통해서 역사하세요"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