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 "내 영혼아, 대체 어쩌자로 낙심하느냐?" 하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즉 남의 메시지를 받아 들이기만 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라는 것입니다. "왜 이러느냐?" 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에서부터 기도가 사작되기 때문입니다"(19-20).
요즘 '포스트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세상은 '코로나'를 기준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그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 크게 달라질 환경을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더 심각한 위기와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들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마치 '불안'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온 땅을 떠돌아다는 것만 같습니다.
실체 없이 다가오는 이 불안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현대인들에게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분을 통해 모든 관계의 어려움 안에는 '불안'이라는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에게 '낙심'은 그저 상심한 마음 정도가 아니라, '정신 신경증적 질환'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낙심을 방치하면 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낙심 때문에 겪게 되는 불안증을 내버려 두면 신앙까지 흔들리게' 되는 경우도 의외로 높다고 합니다(16). 조정민 목사님은 <왜 낙심하는가?>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왜 낙심하는가?>를 읽으며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부분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조정민 목사님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5)라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낙심한 사람은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일어줍니다. 불안에 떠는 내 영혼을 향해 "내 영혼아, 왜 불안해하니?", "내 영혼아, 너 왜 낙심하고 있어?" 이렇게 말을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저도 제 영혼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인가 걱정이 될 때마다, "내 영혼아, 너 왜 걱정하니?"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도 불안하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주시면 불안하지 않겠니?"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대부분과 불안과 낙심의 실체는 거짓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안으로 우리를 속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할 때, 우리는 낙심한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낙심한 이유를 찾아내면 내 영혼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하며 그동안 내가 누구에게,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낙심한 영혼에게 말을 거는 작업은, 내 영혼이 어디에 매여 있는지를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만 우리 소망을 둘 때, 낙심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임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93-94).
<왜 낙심하는가?>는 말씀의 위력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결국, 말씀 안에서 우리 인생이, 우리의 고난이 해석되어질 때, 모든 상황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시선이 옮겨지고, 그렇게 시선이 달라질 때, 우리의 태도가 역전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결국 <왜 낙심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는가의 싸움이며, 내 마음속에 누구를 초청할지를 결단하는 싸움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인들에게 낙심의 문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 믿음의 싸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