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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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정된 공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무런 방해나 한계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옥중에 몇십 년을 갇혀 있어도 기어이 시와 산문을, 책을 쓰는 이들이 있듯이.

조지 오웰이 말했듯 '감금을 견딜 수 있는 건 자기 안에 위안거리가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던 셈이다(208).

하루 시간을 내어 경북 지역을 다녀오고 나서 스스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면서도 괜찮았습니다. 아니, 즐거웠습니다.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라는 다정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이 제게 위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본 영화는 웬만하면 두 번 보는 일이 없고, 한 번 읽은 책도 (시험이 아니면) 두 번 읽는 일이 별로 없는 저인데. 이 책은 어쩐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것만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듭니다.

단순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아껴 읽고 싶었는데, 제 눈이, 제 마음이, 자꾸만 이 책을 탐하는 바람에, 명절에 음식을 먹어치우듯, 다 읽어버렸습니다. 중간 중간 책 속에 등장하는 밴드 메탈리카의 <No Leaf Clover>나 독일 밴드 풀스 가든의 <Emily>, <It's De-Lovely>, <Deep Purple> 등과 같은 음악을 찾아 듣느라 몇 번쯤 멈춘 것 말고는, 읽는 것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다만 등나무 꽃말을 가장 좋아할 뿐이지. '어서 오세요, 아름다운 나그네여.'"(110)라는 문장은 외우고 싶어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과나무 밑에 앉지 말아요"(112)라는 문장은 너무 애절해서, "오래전 앵두나무집 룸메이트 Y의 꽃말은 언제까지나 봄비이다"(139)라는 말은 애틋해서, "그 후로는 세상 살면서 다시 그렇게 도망친 적은 없었다"(148)라는 말은 가슴을 울려서 밑줄을 긋고, 긋고, 긋고, 그으며, 가만히 소리내어 여러 번 읽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굿나잇책방에만 있는 <사물의 꽃말 사전>을 흉내내어, 혼자 정이 들었던 물건들, 사람들, 기억들에 꽃말을 붙여주는 놀이를 해보기도 합니다.

미처 쓸쓸할 새도 없이 살아낸 비어 있는 날짜들을 기억해주기로 한다.

기록하지 않았던 이름표 없는 보통의 날들.

여리고 풋풋했던, 인생이 평탄하고 버드나무 말고는 아무도 눈물짓지 않았던,

베개 옆에 꿈이 있어 고마웠던 그날들을(23).

예전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세상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나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도우 작가님과는 이 번이 세 번째 만남인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구나!' 작가의 기억을 타고 펼쳐지는 보통 날들의 보통 이야기들이 이처럼 어여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이 예뻐야 말도 예뻐지고, 삶도 예뻐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다정한 책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는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께도, 선배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영화에도, 음악에도 취향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 저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이 책을 보여주며 그냥 이런 책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집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야기와 작가를 분리하지 못하여 작가님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자 종종 있는데, 이도우 작가님에게 매번 반하고 맙니다. 또 한번 반했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자가격리 중인 분들에게 보내는 응원 박스 안에 음식 외에 이런 책도 한 권쯤 넣어 보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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