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스캇 솔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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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뛰어넘어 일관되고도 아름답고도 참된 방식으로 믿음을 표현하고 싶은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믿음을 지키는 것과 문화에 참여하는 것 사이의 긴장을 잘 풀어내고 싶은가?

분열시키는 대화에서 떠나 예수님과 이웃을 향해 다가갈 준비가 되었는가?

이것은 크리스천이 가야 할 여행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여행이다.

이것은 선 밖으로 나가는 여행이다(27).

 

저자는 "편 나누기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껴" 이 책을 썼다고 밝힙니다(15). 이것은 비단 저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현대인들이 알게 모르게 '편 나누기'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편 나누기를 그만 두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아이러니 하게도 이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연합과 화해를 이루어야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훨씬 더 까다롭고 예민한 문제입니다. C. S. 루이스가 "기독교는 싸우는 종교"(269)라고 말했듯이, 크리스천의 싸움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가장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들, 갈등의 '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선을 만들고 앞장서서 선을 긋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이미 지배적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시대의 크리스천이 어떤 영역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크리스천들이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여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으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없기도 합니다. 교회 내 여성의 리더 역할이나, 가정 안의 여성의 리더 역할과 관련하여 평등주의와 상호보완주의 논쟁이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입니다.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에수>라는 이 책의 제목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듯이, 예수님은 끼리끼를 모여 서로를 증오하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시고, 서로를 거부하는 '선' 밖으로 우리를 데려가려고 오셨음을 깊이 (정말로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할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행진을 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첫째, 우리가 진짜 '적'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우리가 누구인지 자주 잊는다는 데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반대한 사람들은 독실한 '교인들'이었다"(168)는 한 문장이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요. 저자는 "우리가 진실을 말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아무리 사랑이 기반되어도 반대는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화합과 화해를 위해 내가 죽어지는 사랑을 나타내도 이 싸움에는 반대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묘사해줍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 분노한다면 적어도 그 사람들은 예수님께 분노했던 사람들과 같은 부류여야 한다. 나병환자와 도둑, 주정뱅이, 식탐이 많은 자, 성적으로 문란한 자, 죄인,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반대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께 끌렸고, 그분을 통해 공동체에도 끌렸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그분께 있음을 보았다"(167).

 


 

 

 

그런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 속 크리스천들의 위선은

때로 내게 그 무엇보다도 큰 용기를 준다(213).

저자는 장로교 목사로 수년간 목회하고서도 갑자기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관해 '심각한'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는 프란시스 쉐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프란시스 쉐퍼가 기독교 신앙에 관해 '심각한' 의심을 품은 이유는, "성경이 말하는 현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현실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297-298). 서로를 차별하고, 무시하고, 증오하고, 적대시하며, 분노가 들끓는 세상의 신음소리가 곳곳에 세워진 십자가 불빛을 무색하게 합니다.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는 그럼에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진실한 위선자'라는 크리스천의 역설이 존재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연합과 화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이런 책을 읽으면, 그렇지 맞는 말이지, 이렇게 살아야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할까, 하는 (비판적) 수준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내가 문제였구나, 하는 탄식소리가 나오니 그 절망에서 오히려 변화의 기운을 느낀다고 하면 이것 또한 새로운 교만일까요?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를 읽으며, 스칼 솔즈라는 목사님이 참 사려 깊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자를 닮아 참 사려 깊은 책입니다.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논쟁적이 아니라, (물론 예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환대함으로 연합과 화평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려 깊은 태도를 취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쓰소서"라는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를 많은 크리스천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되고 있는지를 묻는 책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가?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가져오고 있는가?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이루려고 내가 죽어지고 있는가?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는 예수의 사람인가?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삶을 구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세상은 어지럽고 혼란하며, 보수와 진보가 격돌하는 선거가 있고, 인권과 인권이 충돌하며, 이해득실이 갈리고, 공존이 아닌 생존을 위한 싸움이 만연한 현실에 직면하여, 선 밖으로 나가 서로를 포용하고 연합과 화평을 이루는 길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자체가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지요. 어떤 '선'들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책은 그 '선'에 대해 다시 재고해볼 것을 요청합니다. 다른 편과 충돌하는 내 편의 '정의로움'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가 요청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옮음이 아니라, 더 큰 진리 위에 서기 위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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