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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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 해도 그건 진짜가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환야 中에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다 이런 대사를 합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더 멍청해. 좋아하니까 자꾸 바보가 돼. 좋아하니까 자꾸 죽을 걸 알면서도 뛰어들어. 멍청해, 진짜!" 그녀가 읽은 책은 <백야행>이라는 작품입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환야> 띠지를 보면 "백야행의 흥분과 전율을 잇는다"고 평합니다. <백야행>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환야>에도 끔찍한 여자에게 "철저히 인생을 짓밟히고 농락당하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작가는 계속 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사랑은 광기이며, 무수한 세월이 그것을 알려줘도 인간은 그것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야기는 1995년에 있었던 한신 아와지 대지진에서 시작됩니다. 일본 지진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는데, 그 지진이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어떻게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망해버린 공장, 그곳에 덩그러이 놓인 아버지의 관, 그리고 아버지의 생명보험으로 자신의 빚을 갚으라고 압박하는 고모부와 함께 밤을 보낸 '마사야'에게 그날의 대지진은 어쩌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자리에서 새롭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불결한 벌레처럼 자기 옆에 붙어 있던 고모부가 지진의 잔해 속에서 꿈틀 대는 것을 보았을 때, 기왓장으로 내리치고 말았지요. 그 모습을 '미후유'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의 살인을 목격한 미후유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자고 제안했을 때,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끔찍한 과거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미후유의 말이 무엇을 뜻했는지 마사야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마사야의 약점을 쥐고 있는 미후유는 그녀의 '밤' 속에 마사야를 철저히 가둬둔 채, 그를 도구삼아 자신의 새로운 '낮'을 만들어나갑니다.

여자의 과거를 건드리려는 사람들은 조용히 모습을 감추는 가운데,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이 남자와, 여자를 끈질기게 추척하는 한 형사가, 여자의 비밀에 점차 다가서기 시작하면서, 독자는 이 여자의 진짜 정체와 함께 이 남자가 이 여자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여자의 진짜 정체가 드러났을 때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할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나를 배신했지?

왜 내 영혼을 죽였어?

우리에게 낮 같은 건 없다고 당신이 말했잖아.

언제나 밤이라고, 밤을 살아가자고 했잖아.

난 그래도 좋았어. 진짜 밤이라도 괜찮았어.

하지만 너는 그것조차 내게 주지 않았지.

내게 준 것이라고는 환영뿐이었어.

(환야 中에서).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은 '혼을 잃고 갈 곳을 잃은 인간', '이 남자라면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정도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미 (일본)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반전의 묘미를 위해 결말을 생략합니다. 다만,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를 멍청이로 만든다면, 인간이 지닌 최고의 약점은 사랑이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 여자가 그 남자를 뒤에서 조종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살인이라는 끔찍한 과거 때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책을 덮으니 "이건 사랑에 미친 멍청이의 뜀박질"이라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스쳐지나갑니다. 결국 인생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승자인 걸까요? 아니면, 사랑의 광기를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 쪽이 불행한 것일까요?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불길함이 떠다녔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 중 비극적인 잔상이 가장 오래 남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같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책 읽기 딱 좋은 요즘, 재미있는 소설, 읽을 만한 소설을 찾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책을 읽으며 밤을 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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