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강함이 되어 주시지요. 그래서 강한 믿음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강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164).
<믿음을 의심하다>는 정답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닙니다. 믿음에 관한 질문은 결론(정답)보다 풀이, 즉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더 집중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아 어느 한 부분을 떼어 읽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전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적 동의로서의 믿음, 확신과 소신으로서의 믿음, 신뢰로서의 믿음의 차이도 단순히 용어(개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역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말하는 '살아 있는 믿음'의 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을 의심하다>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개념들을 단순히 바로잡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째서 그런 오해들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왜 그런 오해들에 빠지게 되는지부터 차근하게 설명을 해나갑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은사'에 관해 내가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은사는 내가 남들보다 탁월하게 잘하는 그 무엇(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의심하다>는 믿음의 문제는 자기 마음이 상태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 믿음의 내용으로서 그리스도의 순종,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할 때,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강력하게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믿음에 더 알아가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내 안에 큰 기쁨이 풍성하게 넘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믿음을 잘못 이해하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복음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흔히 말들을 보면, '믿음'이 자랑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에 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내는 단적인 지표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일을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말은 행함이 없으면 믿음은 본유적으로 죽은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살아 있네!"라는 말을 듣자는 권면입니다"(54).
<믿음을 의심하다>는 목회자들에게 먼저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책임을 우선적으로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의심하다>를 읽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믿음도 잘 가르칠 때 더 강력하게 역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목회자들부터 믿음을 먼저 점검하고, 바로 이해해야 할 테니까요.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전국민이 느끼고 있는 요즘, '믿음'을 의심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