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죽이기 세계기독교고전 64
존 오웬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의 문제점은 성화론을 기독교 윤리로 대체해 버린 데 있다"(12).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예배에 회개는 사라지고 승리의 외침만 넘치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역자는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에서 오늘날의 문제점은 "성화론을 기독교 윤리로 대체해 버린 데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화가 아니라 기독교 윤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죄'의 문제, 다시 말해 회개의 문제를 단순히 '행위'의 문제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죄를 죽이는 문제가 행위의 문제로 축소되면, 자신의 행위에 따라 '나는 더 선한 사람', 이 정도면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교만한 마음과 우월감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오웬은 죄 죽이기를 단순히 외적으로 행하는 죄를 그만두는 것으로 이해하는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날카롭게 경고합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 사람이 변화되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이 그 죄를 포기한 것이 전혀 아니라 여전히 그 죄를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가증스러운 위선이라는 죄까지 추가함으로써, 이전보다 더 신속하게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 그의 마음은 달라졌지만, 더 거룩하게 된 새로운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니라, 더 교활한 마음이 된 것일 뿐이다"(77). 무서운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죄 죽이기'의 문제를 잘못 이해하면 우리의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더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죄'의 무서움, '죄'의 교활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먼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가 여전히 존 오웬의 <죄 죽이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죄'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죄인'이라고 하면 모욕감을 느끼며 인간의 내재적 선함을 믿는 현대적 분위기 속에서, 교회에서마저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로마서 8:13).

존 오웬은 이 구절을 토대로 죄를 죽이는 것은 신자에게 주어진 임무임을 일깨우며, 죄를 죽일 수 있는 실천적인 지침들을 제시합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죄의 실체입니다. "참된 신자들은 그들을 정죄하는 죄의 권세로부터 분명히 해방되기는 했지만, 그들 안에 내재하는 죄의 권세를 죽이는 것을 그들의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42). 존 오웬은 죄가 단지 우리 안에 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활력과 힘이 있어, 우리를 악에 끌리게 하거나,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훼방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를 죽이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죄의 결과들이 생산해내는 열매가 우리 삶에 가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죄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이 싸우는 것"(47)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는 죄의 죽음도 없다"(95).

(오웬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의 일상은 죄가 우리를 격퇴하거나 우리가 죄를 격퇴허거나, 죄가 우리를 이기거나 죄를 이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율법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죽이는 싸움 자체가 커다란 짐이 되고, 양심이 죄책감에 눌리며, 심판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죄의 실체를 바로 이해하고, 우리의 죄인됨을 깊이 깨달을수록 복음이 진정한 복음이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진실로 깨닫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죄 죽이기>는 결국 매일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죄를 죽는 토대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뿐입니다. 존 오웬은 가장 큰 원수를 물리치기 위해 구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원군, 즉 "성령"과 "새로운 본성"을 날마다 사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 이것만이 죄를 죽이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죄 죽이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 이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죄 죽이기'를 단순히 기독교 윤리적으로 접근할 때, 우리에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 지를 존 오웬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은 영혼은 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그 싸움을 수행할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싸우지 않을 수 없지만,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들은 원수들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휘두른 칼에 찔린 사람들과 같다. 그들은 율법에 의해 정신 없이 쫓기고, 죄에 의해 두들겨 맞는다"(65).

<죄 죽이기>의 핵심은 내가 '더' 깨끗한 사람, '더' 거룩한 사람이 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미워하고, 경계하고, 멀리하고, 파괴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아의 만족이 아니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을 날마다 누리는 거룩한 삶의 자리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책의 표지에 발췌되어 있는 제임스 패커의 고백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죄 죽이기>에 가장 많은 빚을 졌다. 이 책은 영적 금광이다." 재임스 패커의 고백이 공연한 찬사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죄 죽이기'를 잘못 이해하면, 죄를 없애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우다, 죄 가운데서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경건했던 바리새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것, 구원의 기쁨을 충만히 가지는 것은, 죄의 자리,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