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어떤 짐승도, 유전자가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침팬지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땅과 숲을 보며 꽃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짐승과 똑같은 동굴 속에서 살던 때도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과는 전연 다른 허구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신화와 전설과 머슴방의 '옛날이야기' 같은 것입니다"(11).

이 책은, 이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된 이어령 박사님이 한국인의 DNA 속에 생명줄처럼 이어져온 한국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입니다. 이야기꾼의 천성을 타고난 이어령 박사님은 꼬부랑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옛이야기처럼 한국인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 어디서 왔니>를 읽으면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이야기로 이어져 있으며, 생명은 이야기로 시작되며 이야기가 끊기면 목숨도 끊긴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천하루 밤 동안 왕을 위해서 들려주는 아라비아의 이야기가 그랬듯이 진짜로 "이야기가 곧 목숨"(9) 셈입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야기는 '태명'부터 시작합니다. "무엄하게도 고종 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었다니"(15), 태명은 없었지만 '진희'라는 예쁜 아명을 가지고 어린 시절을 살게 해준 부모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탄생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별스럽지 않게 부르고, 말하고, 쓰고, 나누며, 살아가는 나와 너의 이야기 속에 참 많은 세월과 지혜와 사연이 담겨 있음을 새삼 알게 해줍니다. "세계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마당쇠의 마당은 '맏이'가 변한 것이며", "로마인들은 이름이 좋은 사람부터 전쟁터에 보냈으며", "나는 한 살 때에 났다"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소설의 한 대목, "고려 사람들은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는 시시콜콜 하면서도, 깨알 정보를 담은 이야기들이 꼬불꼬불 이어집니다.

어쩌다 보니 세상에 나와 있고,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눈이 아니라 냄새로 엄마의 젖을 찾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모든 힘을 입술로 모아 엄마의 젖을 빨며 살아냈고, 그냥 읽었던 에스겔서 성경 구절 속에 "당시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고, 정결하게 씻고, 소금을 뿌리고, 긴 천으로 둘러 감싸던 풍습이 있었음을"(185) 배우며, 아이가 태어나면 꼭 안아주어 아기가 젖을 물고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한국 엄마들의 이야기에 새삼 감사와 경의를 표하게 되는 책입니다.

언제가 이어령 박사님은 엄청나게 방대한 글감들을 모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문장, 재미있는 이야기, 새로운 정보 등 다양한 글감들을 읽고, 스크랩하고,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다고 말입니다. <너 어디에서 왔니>는 이어령 박사님이 그런 '이야기'들을 얼마나 귀담아 듣는 분이신지, 이야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분이신지 알게 해주며, 이어령 박사님의 지혜는 바로 이야기 속에서 캐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어릴 때부터, 처음부터, '이어령 박사님'이라고 불러서 그런지 제게 이 꼬부랑 이야기 할아버지는 언제나 '이어령 박사님'이었는데 이번에 알았습니다. 이분은 '이야기' 박사님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국인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너 어디에서 왔니>는 어렸을 때 들었던 옛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책입니다. 한국에는 한국의 밤이 있고 밤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밤이 있고 밤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해주는 책입니다. 시시해보이던 삶이었고, 별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를 발견하게 해주는 이야기 책입니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던 아름다움, 미쳐 깨닫지 못했던 소중함들, 놓치고 있었던 의미들을 재미있게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