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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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라는 시가 좋아 '나태주'라는 시인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요. 자그마한 꽃잎처럼 작고 예쁜 이 시를 자꾸만 자꾸만 되내이다 보니 어느새 시도, 시인의 이름도 커져만 갔습니다. '홀로서기'라는 시 이후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적어 보낸 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웠습니다. 치열하게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상처 입은 마음에 고운 말, 예쁜 말, 정다운 말을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상처를 받으면 통증을 일으킨다는 걸, 그 통증을 치료하는 데는 고운 말, 예쁜 말, 정다운 말이 특효약이라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풀꽃 시인 나태주 등단 40주년 기념 시집"이라는 이 시집은 제게 치료제와 같은 언어로 가득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을 여행이라고 생각해달라 하고, 자꾸만 자꾸만 예쁘다고 하는, 그냥 예쁘다는 말이 꼭 제게 들려주는 말 같고, 하늘이 좋다, 구름이 좋다, 골목에 핀 꽃이 좋다, 바람이 좋다, 살아 있어서 좋다 하니 주변에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좋아지기 시작하고, 세다 보니 좋은 것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좋은 것들에 둘러 싸이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 먹어주서 고맙다, 사랑해줘서 고맙다, 세상에 있어줘서 고맙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하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더 마음을 쏟게 되더라고요. 이왕 사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말입니다.

오늘의 약속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 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어릴 때부터 일기를 꽤 오랫동안 써왔는데 가지고 있는 일기장이 한 권도 없습니다. 늘 우울할 때, 슬플 때, 이유도 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 유독 일기를 많이 쓰다 보니 다시 읽기 민망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글을 많이 쓸 거라는 저만의 선입견? 편견? 그런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집은 고운 말, 예쁜 생각, 가장 좋은 표정으로 가득합니다. 시인의 마음이 그러해서 시도 시인을 닮았나 봅니다. 강한 글, 공격적인 말, 힘찬 주장들이 가득한 세상에 이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정다운 시를 읽으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 새소리, 맑은 바람를 세상이 살아 있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기며, 행복해지기로 약속을 해봅니다. 요즘 '착한' 식당, '착한' 가격, '착한' 운전 같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진짜 착한 것이란 이런 것이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진짜 '착한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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