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걷기 - 109편의 스토리를 따라
임경근 지음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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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가?

한국사에 설민석 작가가 있다면, 세계 교회사에는 임경근 목사님이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는 "굶주린 사자도 이기는 믿음,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꽃길은 고통이요 돌짝밭은 은혜라" 이름붙인 로마교회, "탐욕에 눈이 멀어 빛을 잃은" 중세교회, 말씀으로 개혁의 칼을 꺼내들은 루터와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줄기를 타고 흐르는 칼뱅과 그 후, "계몽주의와 인본주의에 물든", 서구교회, 이데올로기의 전쟁 속에 있는" 19-20세기 교회까지 세계 교회사를 한 편의 드라마로 보여줍니다. 대형교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편안한' 목회를 해오다 교회 '개척'이라는 사명에 붙들린 뒤로는 계속해서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질문과 씨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책 속에서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과연 역사 속에 길이 있었습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는 "교회는 각 시대마다 당면한 과제가 있었다"(388)는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드라마틱하게'라 함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시는 역사라는 말이요, 시대의 도전 앞에 반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요,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참으로 '극적인' 감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가 교회 역사를 통해 '오늘'의 교회들에게 일깨워주는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첫째, 교회의 역사는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 다시 말해, 교회는 언제나 사탄의 공격에 직면해 왔으며 사탄은 지금도 쉬지 않고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 사탄의 공격은 시대를 따라 더욱 교묘하고 악랄하고 집요해지고 있으니 이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 안에 깨어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된 교회는 이미 승리했으며, 그 승리는 영원할 것이라는 것!

둘째,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의 승패는 말씀을 얼마나 잘 배우고 잘 지키는가에 달렸다는 것. "초대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말씀이다. 교회가 새 언약의 말씀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또 전파하는지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22).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과 말씀으로 세워진다는 것. 개혁은 칼이 아니라 말씀으로 이루어지며, 신앙은 강제할 때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는 것. 단 한 사람이라도 말씀대로 살고자 결단하고 일어설 때, 성령님은 따르는 자들을 일으키며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신다는 것!

셋째, 핍박은 교회를 강하게 하고 풍요는 오히려 교회를 타락시킨다는 것! 정말 모든 시대마다 교회가 특권과 풍요와 자유와 권력을 누릴 때, 오히려 신앙적으로는 나태해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헌신도는 떨어지고, 힘을 잃고, 세속화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부가 쌓이면 늘어난 재산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신앙의 자유가 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시간과 노력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이 시대는 어떤가? 아무런 핍박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도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탄은 공격을 멈추는 일이 없다.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먹이를 찾는 사자처럼 어슬렁거린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29).

<세계 교회사 걷기>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았던 세계 교회의 역사를 하나의 대하 드라마로 읽으며 거대한 물줄기를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부분 부분, 조각 조각, 듣고 알았던 지식을 큰 흐름을 따라 하나로 꿰어주니 흐트러졌던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자이신 목사님이 칼뱅을 매우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덕분에 저도 칼뱅에 대한 오해도 풀고, 칼뱅과 그 삶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매장마다 밑줄을 긋지 않은 장이 없습니다. 그만큼 배울 것이 많았고, 재미있었던 책입니다. 교회사라고 하면 늘 지루하기만 했는데, 교회의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마음으로 깨닫게 되니, 눈이 확 떠집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그 길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음을 실감합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많고,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들도 많고, 역사에 남겨진 거룩하고 담대한 신앙의 유산들도 많아, 설교자료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재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거나, 교회의 교회됨을 물으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를 통해 교회마다 교회사 배우기 열풍이 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게다가 당시 로마 시민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공허하고 우울했다. 왜냐하면 황제가 각 국가의 종교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 준 탓이다(24).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항거하던 유대인 40명이 갈릴리의 요새 요타파타에 숨었다. 그들은 제비 뽑아 서로를 살육하는 처참한 일을 벌였다. 마지막 남은 사람이 자살하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살아남은 이가 자살하지 않았고 로마 군대에 항복했다. 그는 플라비우스였는데, 베스파시아누스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바로 <유대 전쟁사>를 기록한 요세푸스다(33).

"저는 이제야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나의 길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불이여, 오소서! 십자가여, 오소서! 야수들과 싸워 뼈들이 뭉그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지고, 나의 온몸이 부서질 것입니다. 사탄의 잔인한 고문이여, 오시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게 하시오!"(35,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제네바에서 하룻밤 자고 떠나려 했던 칼뱅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 마침 칼뱅이 제네바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제네바교회의 목사 기욤 파렐이 듣고 칼뱅을 찾아왔다. … 그는 제네바교회의 개혁에 진이 빠져 있던 참이었는데, 칼뱅의 소식을 듣고 제네바교회를 위해 적임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 칼뱅은 교회에서 설교를 해본 적도 없고 목회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칼뱅은 책을 읽으며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기 위해 바젤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목사직을 요청받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칼뱅은 기욤 파렐의 요청을 단박에 거절했다. 하지만 기욤 파렐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정도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와 함께 주님의 일 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당신의 연구는 위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습니다"(196-197).

프랑스 위그노는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경제적으로 부요하거나 지식인이 많았다. 위그노의 망명은 그 지역이나 나라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신 프랑스는 그들의 지적 능력과 경제력을 잃으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241).

청교도에 대한 오해들도 있다. … 삶이 엄숙해 숨이 막히고, 검정 옷만 입어 패션 감각이 없고, 남녀를 지나치게 구분할 뿐만 아니라 성적 쾌락을 죄악시하며,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조장한다고 비난받았다. 이런 비난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오해들로 덧씌워졌다. 청교도는 신앙과 삶이 균형 잡힌 신실한 성도들이다. 죄를 멀리하고 미워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과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맘껏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다. 청교도가 주일에 즐겨 입던 검은색 옷은 당시 전통에서 볼 때 고급 패션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262).

주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점점 지식인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혜란 하나님과 성경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계발해 만든 것이었다. 계몽주의로 무장한 인간은 교회의 기초를 흔들고 신앙을 흠집 내기 시작했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폭발한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도전은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289).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성을 신뢰하던 인간이 만든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간 탐욕의 결과는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였다(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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