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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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날씨는 참 신기하다, 나는 생각했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145).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날씨의 영향 아래 살아갑니다. 특히 '오늘'의 날씨에 만감하지요. 날씨는 오늘 나의 옷차림을 결정하고, 세차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들이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펌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배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비행기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서부터 씨를 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무를 심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까지 사실상 우리의 모든 일상을 결정합니다. 거기에 습도, 온도에 따라 우리의 불쾌지수, 그러니까 감정까지 날씨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오늘처럼 맑은 날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기묘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날씨의 아이>는 우리가 누리는 푸른 하늘이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섬 소년 '호다카'는 해안 절벽 끝에서 멀리 바리 멀리 흘러가는 햇살을 보며 "언젠가 저 빛 속으로 가자"(42) 결정을 했고, 도쿄로 가출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미쳐 돌아가는 날씨 속의 도쿄는 연일 강수일수 갱신을 기록했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거리에서 마치 그 섬 소년만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한없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100% 맑음 소녀 히나를 만나게 됩니다.

날씨의 무녀에게는 슬픈 운명이 따르지(186).

우여곡절 끝에 수상한 잡지사에 취직을 한 호다카는 히나에게 맑은 날씨를 불러올 수 있다는 능력을 알고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미쳐 돌아가는 날씨 속에 도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맑은 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호다카의 <날씨 비즈니스>는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평판을 얻었고, 100% 맑음 소녀는 인터넷에서 소소한 전설이 되고 있었습니다(140).

히나와 함께하는 푸른 시간 속에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호다카는 잡지사 일로 취재를 나갔다가 뭔가 불안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날씨의 힘을 함부로 사용하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다"(57). 하늘과 사람을 잇는 가느다란 실, 그게 날씨의 무녀인데, 인간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 하늘에 전하는 날씨의 무녀에게는 날씨를 치료하는 힘도 있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가는 게 이 사회니까(216).

많은 한국 독자가 <날씨의 아이>에 주목한 것은, 작가의 전작 <너의 이름은> 때문일 것입니다. <너의 이름은>이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이야기였다면, <날씨의 아이>는 이상기후로 크고 작은 재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류는 하늘에 원하는 날씨를 기원할 때마다 '제물'을 드려왔습니다.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희생을 통해 원하는 날씨를 얻고자 함이었지요. 제물 한 명이 희생함으로써 미친 날씨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한 사람쯤 희생되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온 것입니다.

우리가 바꿨어. 그 여름, 그 하늘 위에서 내가 선택했어. 푸른 하늘보다 히나 씨를.

수많은 행복보다 히나 씨의 생명을. 그리고 우리는 기도했어.

세상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저 모두 함께 살아가기를(332).

원하는 날씨를 얻기 위해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 '제물'에 반대할 수 있을까요? 가벼운 동화처럼 읽히는 <날씨의 아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제법 묵직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푸른 하늘이 사실은 누군가와 맞바꿔 찾아온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려 하는 것이 얼마나 지독히 이기적인 삶인지, 그것은 사실 뭔가를 짓밟으며 사는 것이며,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만 지탱되는 삶이라 것을 눈을 열어 보게 해줍니다. <날씨의 아이>는 인간의 바람은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동안의 우리의 바람이 지금처럼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만들어냈다면, 이제라도 다른 꿈을 꾸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담아낸 영상이 궁금합니다. 영화도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천천히 소리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말이 되기 이전의, 공기의 떨림 같은.

그것은 아마도 사람의 바람이다.

그것은 열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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