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오늘 어떤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요?


"옛날 옛날에 꾸뻬 씨란 정신과 의사가 살았다. 그는 사람들한테 핑크색 안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자기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환자들이 주변을, 자기 자신을, 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건 이를테면 이들에게 새로운 안경을 만들어주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10).

꾸뻬 씨가 다시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입니다. 꾸뻬 씨는 "당신은 오늘 어떤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을 덜 암울하고, 덜 왜곡되게 바라보게 해줄,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보게 해줄 핑크색 안경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꾸뻬 씨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에게도 자기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아내 클라라는 자기에게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할 판이었는데(아내가 무척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꾸뻬 씨가 진료실과 자기가 좋아하는 도시를 떠나야 하는 상황),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헤어진 것도 아닌 이 어정쩡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료실 밖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꾸뻬 씨는 아내를 만나기에 앞서, "뭔가 커다란 번민에 사로잡힐 때마다"늘 찾아가곤 했던 세 친구를 차례로 찾아갑니다. 전쟁터에서 인도주의적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장-미셸, 정말이지 다양한 활동으로 삶을 즐기는 에두아르, 한때 연인이었던 아녜스가 그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함께 책을 쓰기 원하는 젊은 기자 '제랄딘'이 동행하며 그들의 여행은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은 각각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보여주며, 꾸뻬 씨와 함께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자기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신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옮긴이는 이 책이 "소설의 양식을 빌린 일종의 심리치료서"(334)라고 말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몰입하다 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내가 지금 내 삶을 망치는 나쁜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 있고, 나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독자들은 나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찾은 내가 쓰고 있는 나쁜 안경은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나의 약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버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약점에 치중하는 안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 감정 때문에 사태를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보게 된다는 설명도 내 감정을 돌아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꾸뻬 씨는 실연의 상처로 아파하는 제랄딘에게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나쁜 감정을 초래하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사건 A(내가 누군가에게 벌미받다)가 C란 감정(절망감, 죽고 싶은 마음)을 초래한다고 믿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A라는 사건은 B란 생각(예컨대, 앞으론 더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남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을 초래하고, 그러고 나서 C란 감정(절망감)을 초래한다"(121). 꾸뻬 씨는 이를 '정서적 추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제가 쓰고 나쁜 안경이라는 사실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으로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순간, 마인드-리딩(mind-reading), 즉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안경을 끼고 있다고 믿고 있다"(165)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망치고, 스스로에게 깊은 내상을 입힐 수 있는지를 깨달아졌는데, 바로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이 바로 치료가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독서 치료 효과를 톡톡히 경험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꾸뻬 씨를 따라다니며 지금 나는 어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나를 질문하다 보니 이것은 다시 '무엇이 내 삶에 동기를 부여해주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다는 진실과 다시 마주하게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바꿔써야 한다고 말하니까요. 그러니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세상(너)이 아니라 나의 관점, 다시 말해 '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삶의 뭔가를 바꿔볼 작정이라면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가슴에 새겨봅니다.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입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로 혼자 끙끙 앓고 있다면 꾸뻬 씨를 만나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 책 속에서 기대하지 못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떼니까요. 끝으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안경을 바꾸는 일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몸에 익혀야 하니까"(16)라는 조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가까이 하고 계속 되새김한다면, 꾸준하게 몸에 익히는 훈련 또한 이 책이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꾸뻬씨의 저자 인터뷰 영상 (김미경tv) :

https://youtu.be/pzVcqRAf9U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