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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지 않은 독서 - 즐겁고 깊이 있는 성경 읽기
김광남 지음 / 올리브북스 / 2019년 8월
평점 :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할 때,
교회에서 "복음"이 "훈계"로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거룩하지 않은 독서>는 '성경' 읽기의 한 시도입니다. 교회는 '렉티오 디비나' 즉, '거룩한 독서' 또는 '영적인 읽기'로 번역되는 고전적인 형태의 성경 읽기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하지 않은 독서>라는 이름은 이 '거룩한 독서'에 반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는 읽는 자가 성경 구절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구절 자체에 자신을 맡기는 성경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큐티'를 개인적 차원의 거룩한 독서, '설교 듣기'를 공동체 차원의 거룩한 독서라고 보며, 성도들이 이런 방식으로만 성경을 대하면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째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과도한 해석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드러내는 모든 문제의 밑바탕에는 잘못된 성경 읽기가 있다"(15).
그런 문제점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우리 교회는 실제로 성경 전체의 맥락을 모른 채 특정한 성경 구절의 주관적 감상을 은혜로 확신하는 청년들에게 큐티 훈련보다는 우선적으로 성경 통독을 권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 통독은 또 읽기는 읽되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는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장벽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거룩하지 않은 독서>는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독서>가 '거룩한 독서'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하지 않은 독서>는 보완적입니다. 주관적 감상에 필요한 객관적 해석을 더하여 성경 읽기의 균형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독서>는 성경 읽기의 입문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거룩하지 않은 독서>의 일차적인 목적은 성경 전체의 맥락을 잡는 것입니다. 숲의 윤곽을 그리듯,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각 권의 주요한 특징과 핵심 메시지들을 과감하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독서>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각 권의 핵심 메시지들을 이성적(?)으로 호방하게 그려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신학의 취사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솔직히 신학적으로 '정통하다'는 느낌은 부족합니다. <거룩하지 않은 독서> 또한 또 하나의 해석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저자는 공관복음서를 (목격자들의 증언이 아니라) "사상적 영감에 의한 작품"으로 보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야말로 성경을 읽는 저자 개인의 "사상적 영감"이 강하게 작동하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성경을 읽어주는, 설교의 다른 형태 같다고나 할까요. 분명한 것은 흥미로운 시도이며, 성경 읽기의 즐거움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성경을 읽어주는 남자"로 유명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